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아홉 번째 기초석은 담황옥입니다. 담황옥은 토파즈라 불리는 붉은 오렌지색의 투명한 보석입니다.
담황옥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양선’입니다. 양선의 사전적 의미는 ‘어질고 착함’인데, 영적 의미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세상에서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은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서 시대나 나라,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양선의 기준은 오직 하나입니다. 진리인 하나님 말씀만이 변함없는 기준입니다. ‘자기 보기에 선’을 추구하는 마음은 영적 양선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과 이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영적 양선입니다.
양선이 임한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나옵니다(마 12:35).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선한 말과 행실이 나오지요.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한 사람에게서 선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만 선을 추구하는 것은 양선이라 하지 않습니다. 선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선한 말과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주변에 덕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양선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를 봤지만 그냥 피해 가 버렸고, 레위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눅 10장). 당시 제사장과 레위인이라면 하나님 말씀을 지식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양선이 없으니 그냥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던 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 주고, 자기가 타던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떠나면서 돈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처럼 내 물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택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양선입니다.
양선한 사람은 예수님처럼 들레지 않으며 아무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이 흠이 없고 교양을 갖춘 온전한 모습이셨습니다. 마태복음 12:19~20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말씀한 대로입니다.
여기서 ‘상한 갈대’란 영적으로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 오직 선만 행하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오히려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인내하며 어떻게든 진리로 깨우쳐 주고 구원하려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양선의 절정입니다.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악으로 심히 물들어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마음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상한 갈대,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시험 환난에 넘어져 혼자서는 교회에 나올 영적인 힘이 없는 사람, 아직 버리지 못한 비진리로 인해 주변에 해를 끼치고 민망하여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진정 양선한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리고 품을 줄 압니다. 흑백을 가리거나 옳고 그름을 논하여 상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사랑으로 선대함으로써 악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주는 것이 진정한 양선입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요한계시록 21:20) 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