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건 사고의 소식을 접하다 보면 참으로 불법이 성하고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을 무시한 끔찍한 범죄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요. 사람이 죄악 중에 살아가는 것은 살아 계셔서 모든 행위를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빛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한 어둠의 자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시기까지 엄청난 희생의 값을 치르고 원수 마귀 사단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기 위해 새롭게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온전한 사람의 본분을 찾아가야 합니다(엡 4:22~24).
그러면 우리는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구세주 되시며 신랑 되신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생각, 보고 듣고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살펴 이를 기준 삼아 행하면 사람의 본분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맑고 깨끗하고, 청아하고 순결하며, 흠도 점도 티도 없는 참으로 거룩한 마음을 지닌 분이십니다. 또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낮고 천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만큼 겸손한 마음을 가지셨지요(빌 2:6~8).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말에서 그 마음이 나타납니다. 물론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있고, 거짓말을 하여 미혹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진실하여 빛 가운데 살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하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악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가룟 유다와 오직 선한 말로 감동을 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릴 때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며 여인을 책망합니다. 사실 그는 돈을 사랑하여 탐욕으로 가득 차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였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마음을 다 아시면서도 굳이 그의 악함을 드러내어 “유다, 네가 돈궤를 맡고 있어서 훔쳐가는 줄 내가 모르는 줄 아느냐?”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여인의 행함이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셨지요.
예수님의 마음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온유한 마음, 악한 자라도 품어 변화시키고자 하는 선과 사랑의 마음이셨습니다.
사람마다 선악의 정도에 따라 상대의 실수나 잘못을 보았을 때에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상대의 가벼운 과실을 보고도 싫어하며 악한 말로 상처를 입히거나 주변에 알리기까지 합니다. 반면 상대의 커다란 허물을 보아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신 중보 기도하고, 은혜를 끼쳐 변화로 이끄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선하고 고운 마음을 이루어 은혜와 감동을 끼치는 아름다운 말만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 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