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이탈리아 현대 정치사와 정당정치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적극적인 좌파 정치운동가인 폴 긴스버그 교수의 대표작이자 이탈리아 현대사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책 가운데 하나. 1945년 영국에서 태어나 현재 피렌체 대학교 유럽 현대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리볼타 데이 프로페소리’(교수들의 반역)를 조직하는 등 시민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분투한 민중의 역사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 독일과 연합군에 의한 반도의 분할과 해방, 반파시즘 저항운동을 주도한 좌파와 연합군을 등에 업은 우파의 격렬한 대립,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농업국에서 시작해 1950~60년대를 거쳐 선진 공업국으로 빠르게 도약한 경험으로 수놓아진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다룬다. 또한 무솔리니부터 그람시, 톨리아티, 베를링구에르, 베를루스코니에 이르는 이탈리아 주요 정치인들의 꿈과 좌절은 물론, 해방 직후 공장 점거 운동과 1969년의 ‘뜨거운 가을’, 공장 평의회 운동과 자율주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이탈리
아’를 건설하고자 분투한 이탈리아 민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끈질기게 펼쳐진 저항운동의 기록으로 시작해 노동자들의 결정적인 패배로 문을 연 1980년대를 서술하며 마무리되는 이 책은, 여전히 국내에는 ‘로마’나 ‘르네상스’에 치우쳐 소개되어 있던 이탈리아사의 지평을 ‘현대’까지 확장한다. 피렌체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유럽 현대사를 가르쳐 온 저자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험을 적절하게 끌어들임으로써 비교사의 분석 틀을 가미해 이해를 돕는다. 전쟁과 빨치산 투쟁, 해방 정국에 분출된 사회적 열망과 좌절, 급격한 산업화와 이농, 노동계급 운동 등의 역사적 경험은 기시감이 들 만큼 한국 현대사와 유사한 면이 있는데, 이 또한 비교 관점의 독서로 이끈다.
정당의 분투기이자 정치사
흥미롭게도 이 책은 해방 이후 이탈리아에서 치러진 모든 총선과 일부 지방선거의 주된 이슈 및 그 맥락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현대의 군주’에 빗대며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람시는 “정당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탈리아현대 정치사와 정당정치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폴 긴스버그 또한 이 책에서 정당을 분석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195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현대 이탈리아 정치에서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안정적 다수파의 결여’다. 각 정당들이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다지고자 치열한 각축을 벌이며 이탈리아 사회의 지역 및 부문에 파고드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탈리아 정당의 분투기이자 정치사기도 하다.
최근 국내에서 복지국가 및 사민주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독일과 스웨덴, 일본 등의 좌파 정당을 소개하는 단행본들이 출간되었지만 이탈리아 좌파 정치사를 온전히 다룬 책을 발견하기 어려웠는데 이 책을 통해 그 공백을 얼마간 채울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이탈리아의 주요 정치인들은 물론 CGIL과 CISL을 비롯한 노동 조직 및 여러 사회단체의 주요 인물들, 그 밖에 공장과 농장, 거리에서 만난 민중들이 빚어낸 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개별 사건들이 소개되지만 이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 시기를 아우르며 그 국면의 전후 맥락과
의미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둘러싼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