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한태 기자]전북 전주병(구 전주덕진)은 4선을 노리는 국민의당 정동영 전 의원과 재선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다. 전주고, 서울대 선·후배 사이로 과거 10년간 정치 동반자였던 두 사람은 이번 20대 총선을 앞두고 적으로 다시 만났다. 김 의원은 1996년 정 전 장관이 전주덕진에 출마했을 때 선거기획팀으로 참여했으며 선거 정책공약도 담당했다. 이 때문에 '정동영의 오른팔'로도 통했었다.
◆정동영“내가 철새? 내 핏속엔 정통 야당의 피가 흐른다”
지난 3일 낮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모래내 시장까지 정동영 전 의원의 유세 현장을 동행했다. 남부시장은 전주병 지역구는 아니지만 전주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주말이면 평균 2만 여명이 찾아오기 때문에 전주지역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주요 유세현장 중 한 곳이다.
남부시장 곳곳에는 '응답하라 국민의당'이라는 당 로고와 함께 '일자리 햇볕정책 공정임금, 또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공정임금은 정 전 의원의 주요공약 중 하나다.
정 전 의원은 시장 상인들에게 "제가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제1호법안으로 통과시킨 것이 '재래시장특별법'"이라며 "시장단가제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지지를 호소하자 이곳 저곳에서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유세 도중에도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던 한 노인의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하고, 솥뚜겅 모양의 구이판을 만져보며 상인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등 유권자들을 향한 익숙한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의원은 일단 당선이 되면 그 다음번 재선을 위해 재선 운동에 돌입해 지역 활동을 하는데 저의 경우는 지역을 다닌적이 없고 전국을 다니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빚을 많이 진 느낌이라 미안하다"며 고향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이번 총선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에 뒤지고 있는 것에 대해 "무엇보다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며 "여론조사는 변하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지도가 올라갈 것으로 믿는다"고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선거 때마다 자주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는 탓에 '정치 철새'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는 이에대해 "야당 이외에는 해본적이 없다. 내 핏속에는 정통 야당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철새라는 것은 노선과 신념 없이 정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고 올바른 노선에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항변했다.
한 때의 동료였던 김 의원에 대해서는 "똑똑한 후배"라면서도 "저와 정치를 같이 한 후배는 아니다. 당의 다른 계파에 섰던 인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성주 “정동영은 야권 분열 초래한 인물”
같은날 오후 4시께 송천2지구대 앞에서 만난 김성주 의원은 덕진구 내 송천로 등 지역에 인도 설치를 앞두고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 지역은 초등학교 등교길임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없어 교통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해 학부모,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던 곳이다. 지난해 김 의원이 특별교부세 5억을 확보했고, 다음달 착공에 들어간다.
이날 당을 상징하는 파란 점퍼 속에 흰색 와이셔츠와 곤색 넥타이를 매고, 파란색 운동화를 맞춰 입은 김 의원은 인도 설치 예정 지역을 함께 걸으면서 주민들을 만나자 악수를 청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며 "이제 지난 4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호남 정치의 부활을 위해 힘쓰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는 정 전 의원에 대해 "한때 우리의 존경을 받는 지지자 였는데 19대 재·보궐선거에서 탈당이라는 방법으로 관악을에 출마해 본인의 낙선과 함께 관악을을 새누리당에 헌납했다는 점에서 매우 가슴아프다"며 "야권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야권 분열을 초래한 인물, 야권 분열의 씨앗"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과거 두 차례 총선에서 (지역 주민의) 90%가 정 전 의원을 밀어 주었는데 실망스럽다"며 "한번 정도는 안아줄 수 있지만 민심은 왔다갔다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정 전 의원의 잦은 지역구 변동을 꼬집었다.
그는 "저는 30%대의 확고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정 전 의원이 출마선언은 늦었지만 그동안 사실상 덕진지역 출마 의사를 내비쳐 온 것에 비해 아직도 지지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실제 선거는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승리는 기호 2번인 제가 될 것"이라고 승리를 자신했다.
◆주민들“미워도 다시 한번” vs “철새정치인”
지난 4일 전주병 지역구인 인후2동 모래내 시장과 송천동 아파트 인근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의 민심은 혼란스러웠다.
정동영 전 의원의 경우 대통령선거 후보까지 지낸 정치 거물이 국회에 입성할 경우 지역 발전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철새 정치인'이라는 실망감도 상당했다.
정 전 의원은 전주덕진에서 15대, 16대 총선 모두 90%에 육박하는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지만 17대 대선에서 패배한 후 18대 총선에서는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다 낙선한뒤 2009년 4·29재보궐선거에서 다시 전주덕진에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됐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서울 강남을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19대 재·보궐선거에서 국민모임 소속으로 야당의 텃밭이었던 관악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3등으로 낙선하고 27년만에 여당에 자리를 내줬다는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역구를 3번이나 바꾸고 3차례 탈당과 복당을 번복해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이 일고있다.
모래내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정동영은 너무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 아예 우리 지역에 오지 말았으면 한다"며 정 전 의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또다른 상인은 "높은 인지도 때문에 설령 고향에서 다시 당선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이미 중앙정치에서도 힘을 발휘 하기에는 이제 늦었지 않나 싶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이 전주가 낳은 '대권 주자'였던 만큼 동정론도 여전했다.
50대 상인 김모씨는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래도 미워도 다시 한번 정동영'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며 "결국 막판에는 그래도 정동영 찍자는 사람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모(55)씨는 "정동영이 국회가서 한 마디 하는 것과 김성주가 한 마디 하는 것은 천지 차이가 난다"며 "초선 의원들은 국회에 뱃지 달고 나가도 말도 못한다. 정동영이 전주 시내에서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은 먹히니까 정동영을 뽑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정 전 의원 지지자들의 속내를 나름 분석했다.
김성주 의원은 정 전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참신하다는 평가는 받고 있었지만, 역시 문제는 인지도였다.
김 의원을 잘 모르겠다고 밝힌 한 주민은 "지난 4년간 이 지역이 소외됐는데 김 의원이 전주덕진을 위해 무얼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모래내시장에서 만난 상인 김모씨는 "김 의원에 대해 솔직히 큰 호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정동영을 다시 찍는 건 지역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안좋기에 나는 김 의원을 찍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송천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만난 주부 서모(38)씨는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둘 다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누구를 뽑을지 아직 결정 못했다"고 했다.
◆주요 후보자 프로필 및 공약
김성주 의원= ▲1964년 전북 전주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전주대학교 겸임교수 ▲제19대 국회의원 ▲국제금융도시, 탄소산업도시
정동영 전 의원= ▲1953년 전북 순창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통일부 장관 ▲제15대, 16대, 18대 국회의원 ▲공정임금제, 개성공단 부활, 전주의 세계적 관광도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