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시리아 출신인 모하메드(25)는 올해 초 터키 암시장에서 기술공 일자리를 찾으려 숱하게 고생했다. 시리아인이어서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암시장에서 한 번도 적절한 보수를 받은 적이 없었다. 모하메드는 친구와 함께 터키 서부 해안가 도시인 이즈미르에 살았는데, 그리스로 넘어가 망명을 신청하려고 종종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난민선을 찾았다.
올해 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모하메드와 비슷한 나이대의 시리아인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결혼할 수 없었지만 모하메드는 결혼에 성공했다. 그는 터키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아파트를 구해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더이상 기술공 일자리를 찾지 않는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내가 새로 구한 직업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유럽행 난민 행렬에 동참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시리아 난민들을 그리스로 보내주는 대가로 돈을 챙긴다. 실업 상태였던 기술공은 어느새 부유한 난민 밀입국 브로커가 돼 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8일(현지시각) 시리아 난민 밀입국 브로커로 활동하는 모하메드의 사례를 소개했다. 모하메드의 인생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뒤바뀐 것은 시리아 난민 사태로 '예상하지 못했던' 직업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난민 밀입국 브로커가 그것이다.
모하메드는 지난 5월부터 브로커로 활동했다. 브로커로 활동하던 모하메드의 친척이 일손이 필요해지자 모하메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는 길이 유럽으로 들어가는 난민들의 주요 경로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해 난민 4만3000명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갔다. 올해에는 난민 행렬이 80만 명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다른 브로커들처럼 모하메드도 생각보다 많은 난민 행렬에 놀랐다. 지난 9월 모하메드는 난민 행렬이 점차 잦아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10월은 전달보다 더 바쁜 한 달이었다. 11월에는 난민 숫자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으나, 지난해 전체 난민 숫자의 3배가 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12월이 되자 모하메드는 난민 숫자가 줄어들 거라는 예상을 아예 접었다.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모하메드는 자신이 밀입국 브로커 일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브로커들은 모두 무자비하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3살 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에게해에서 숨진 뒤 모하메드는 난민들이 위험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행 난민선에서 익사한 사람들의 소식을 들어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다. 모하메드는 "우리의 실수가 아니라 운명이다"라며 "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오직 신만이 누가 유럽에 들어가는지 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브로커 일을 하며 많은 돈을 번다. 난민들이 많이 몰리는 계절에는 난민 1명 당 1000달러(약 116만 원) 상당의 돈을 주고 난민선 자리를 예약한다. 브로커인 모하메드는 1000달러 중 최대 200달러까지 이익을 챙긴다. 난민선 1척에는 40명이 앉을 수 있다. 시기에 따라 모하메드는 1000달러에서 2만 달러까지 벌고 있다. 추운 겨울철에는 난민 숫자가 여름철보다 줄어든다.
모하메드는 브로커로 일하면서 현지 경찰이 점차 부패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난민선이 오가는 해안가에 상주하는 터키 경찰은 현재까지 4명밖에 없고, 이들은 밀입국 과정에서 돈이 오가는 것을 묵인했다. 모하메드는 "상부에서 얼마나 압박하느냐에 따라 경찰의 단속 강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이 터키와 맺은 협약에 따라 터키 경찰은 12월 초부터 브로커와 난민들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했다고 모하메드는 전했다. EU는 터키의 난민 관리를 돕고 터키는 유럽에 밀입국하는 난민 숫자를 줄인다는 것이 협약의 골자다.
모하메드는 그럼에도 난민 행렬의 규모를 줄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들어갈 때까지 7~8번이나 입국을 시도한다"며 "유럽으로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시리아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마스쿠스에서부터 위험한 여정을 거쳤다. 유럽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