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팔레비 전 이란 국왕, 배우 고 말론 브란도….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모두 마담 클로드라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뚜쟁이의 단골 고객이었다.
전화를 통한 예약을 도입해 성매매에 콜걸이란 말이 처음으로 사용되게 했던 마담 클로드(본명 페르낭드 그뤼데)가 지난 21일 92세로 숨졌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파리 샹제리제에서 회원제의 최고급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며 한때 500명이 넘는 여성들을 관리했던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남성 지도자들에게 여성들을 대주는 가장 악명 높은 뚜쟁이였다.
마담 클로드는 결코 자신의 고객 명단을 누설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고객들에는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그리스의 전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이탈리아 피아트의 지아니 아넬리 회장 같은 재계의 거물들과 화가 마크 샤갈 같은 예술계 인사 등 세계의 유명인들이 수없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7월6일 프랑스 서부 앙제에서 태어난 마담 클로드는 2차대전 중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살아남았다. 그 자신이 성매매에 종사하기도 했던 그녀는 성매매 여성으로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는 1994년 자서전 '마담'에서 자신이 그리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1년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면서 그녀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다. 마담 클로드는 패션의 본고장 파리의 일류 모델들과 최고 대학에서 여성들을 스카웃한 뒤 개인 교수를 시키며 예술과 철학을 가르치고 해외 여행을 시키며 외국어와 외국 문화를 익히도록 했다.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지성까지 갖춘 최고의 파트너로 만든 것이다.
그녀 밑에서 일하던 성매매 여성들 가운데 30∼50명의 최고 미녀들 중 한 명과 하룻밤을 함께 하려면 최소 1만 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담 클로드는 이러한 수입의 30%를 자기 몫으로 챙겼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마담 클로드는 1970년대 성매매 척결을 내세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에 의해 쇠퇴기를 맞는다. 세금 포탈 혐의로 조사를 받던 그녀는 1976년 미 로스앤젤레스로 도피했다가 10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결국 4개월의 징역형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그녀의 고객들이 프랑스 당국에 압력을 가해 그녀를 보호했다는 주장들이 난무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마담 클로드의 삶은 프랑스에서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77년 영화 '마담 클로드'에서 주연을 맡았던 프랑스 여배우 프랑수아 파비앙은 그러나 그녀에 대해 "끔찍한 여성"이라고 평했다. 파비앙은 마담 클로드에게 있어 남성은 단지 "지갑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클로드는 "남성이 여성에게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는 단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음식을 만들어줄 때이고 나머지 하나는 섹스를 제공할 때"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첫 데이트에서 잠자리를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