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정부가 가격 인하 효과가 없는 가방, 시계 등 일부 품목의 세금 부과 기준을 다시 올리기로 한 데 대해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금을 깎아주면 가격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란 정부의 '합리적 사고'가 너무 순진해 이 같은 촌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3일 "소비여건 개선 등을 위해 상향 조정했던 개별소비세 과세 기준가격을 일부 품목에 대해 환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가격인하가 부진한 가방, 시계, 가구, 사진기, 융단의 기준가격은 500만원에서 당초 200만원으로 하향조정된다. 보석·귀금속과 모피의 경우 가격 인하가 이뤄진 점을 고려해 이번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국 과세기준이 높아지는 주요 품목은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방, 시계 등 사치품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재현 재산소비세정책관(국장)은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개소세를 인하하면 소비자 가격을 어느 정도 인하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다"며 "정책 효과가 발휘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원래대로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개소세 인하 결정 이후 기대보다 가격 인하 조치가 없자 현장점검과 수입 업체 관계자들과의 간담회 등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그러나 해외 명품 브랜드 업체의 경우 가격 결정권이 해외 본사에 있다보니 정부 정책의 취지대로 가격을 인하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 인하분은 고스란히 수입업체 등에 쌓이고 있어 정부로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임 국장은 "정부 정책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는데도 지금까지 가격 인하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가 취할 세금을 소비자에게 돌려줘 소비를 많이 하게 하려는 취지였는데 이 루트가 작동이 안되니 기준을 원상복구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가격을 상향 조정한 브랜드도 있었다. 샤넬은 이달 1일부터 인기 가방 품목인 아이코닉과 보이백의 가격을 6~7% 인상하기로 했다. 2.55 빈티지 제품은 600만원→639만원, 그랜드샤핑은 341만원→363만원으로 올랐다. 신발과 지갑 제품의 가격은 인하했지만 이는 개소세 과세기준가격 조정 대상이 아니다. 즉, 브랜드의 가격 결정에 정부 정책이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이 같은 결과에 정부는 '혼이 나더라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개별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개소세 기준을 하향 조정하게 된 이유는 가격 인하가 이뤄진 보석·귀금속, 모피 업계의 요구가 컸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가방과 시계 등도 함께 사치품 카테고리에 속해있다 보니 형평성 차원에서 같이 과세 기준 가격을 내려준 것인데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애초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격 정책이 원가나 세금부과 여부보다는 이미지에 더 많이 좌우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정부가 선심성 정책을 베풀었다가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이를 거둬들이는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게다가 한국 시장에서는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는 '베블런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실제 한 세제실 관계자는 "명품업체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가격을 깎아주면 기존 소비자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온다'는 하소연도 접했다"고 토로했다.
'호갱(호구+고객)'이 되지 않으려면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데, 소비자를 호갱으로 만드는 것이 기업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상황에서 정부의 이번 개소세 과세 기준가격 하향조정은 너무 일차원적인 조치였다는 평가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