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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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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하늘 한 귀퉁이가 찢어진 듯 장대비가, 아니 기둥비(이런 단어는 사전에  없지만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장대비라 한다면, 하늘과 땅을 잇는 물기둥이 선 듯이 퍼붓는 비를 나는 기둥비라 부르고 싶다.)가 땅을 헐어내고 있다.

오늘은 골프 약속이 있었다. 골퍼들의 골프약속은 칼처럼 예리하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번개가 치나 티오프시각 30분전에 클럽하우스 집합이다. 예외는 골프장의 휴장 뿐이다.
엊저녁의 호우주의보가 오늘 아침에 호우경보와 낙뢰주의보로 바뀌면서 골프장 측으로부터 휴장 통고가 왔다. 비옷과 우산과 장갑도 5개나 챙겨넣었는데, 맥이 풀렸다. 오늘 하루는 할 일없는 백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긴 기상대에서는 일주일 전에 오늘의 장마와 태풍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기상대의 일기예보가 미쓰샷이기를, 기상이변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부킹을 따내는 사람들이 골프광이지 않은가.
골퍼들에게 물어보라. 내일의 일출은 몇 시이며 일몰은 몇 시 몇 분인지, 다음주 수요일의 최고 기온과 강수확률과 강수량이 얼마나 될 것인지에 대해. 골프장의 부킹시각은 일주일 전에 결정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골퍼들은 일주일 후의 날씨에도 예민하다.
무엇을 할까. 옷장에 좀약도 넣어야 겠고, 우편물들도 찬찬히 살펴봐야겠고, 밑반찬도 몇 가지 장만해야겠고, 청탁 받은 원고도 미리 써놓으면 마감날 임박해서 밤샘을 하지 않아도 되련만...
그러나 아무것도 하기 싫다.

골프백에서 채를 꺼낸다. 엊저녁에 닦은 채는 잘 벼린 도끼날처럼 빛난다. 장갑을 끼고 그립을 쥔다.  어드레스, 왜글, 테이크백, 저절로 백스윙이 시작된다. 거울에 스윙폼을 비쳐보고 몸을 왼쪽으로 꼬았다가 풀어본다.
퍼터를 꺼낸다. 퍼팅메트 위에는 흰 공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공을 가지고 논다. 가까이도 멀리도 보내본다. 공의 엉덩이를 차보기도 하고 발목을 때려보기도 한다. 가다가 서 있는 공을 다른 공으로 밀어보기도 한다. 이내 싫증이 난다. 지루하고 허리가 아프다.
창가에 의자를 옮겨놓고 앉는다. 유리창에 조롱조롱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창밖의 풍경이 호수에 비친 물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나른하게 졸음이 몰려온다. 눈꺼풀은 내리 덮이지만 여전히 퍼터는 쥐고 있다. 

님 찾아 꿈길을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떠나
밤마다 오가는 길 언제나 어긋나네
이후란 같이 떠나서 노중봉(路中逢)을 하고저.
                                -황진이의 꿈-

시냇물이 바위틈을 흐르는 소리를 따라간다.  햇빛을 걸러주는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을 따라 걷는다. 나는 지천으로 널린 풀을 훑어 씹어본다. 맞닿은 이의 끝을 찌르는 풀의 독향에 나는 잠시 아찔하여 눈을 감는다. 눈을 뜨니 내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어디선가 만난 듯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어서 오세요. 기다렸어요.”
나는 남자와 그루터기에 앉는다.
“여기가 어디에요? 전 시냇물을 따라왔는데요.”
“여긴 지옥이에요.”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휘돌려 사방을 돌아본다. 싱그러운 나무의 숨결, 재잘대며 굴러가는 시냇물소리, 온몸을 휘감아오는 꽃향기에 숨이 막힌다. 화려한 깃을 뽐내는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우리를 환영하듯 지저귀고 있다. 발 밑은 비다듬어진 잔디이다. 우리는 지극히 아름다운 골프코스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이다.
“여긴 천국.. 아닌가요?”
진한 향기를 뿜어내며  요염하게 피어있는 꽃송이에 코를 묻으며 내가 말한다.
“아닙니다. 여긴 지옥이에요”.
그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저는 하느님을 만났답니다. 하느님이 제게 천국과 지옥 중에서 가고 싶은 곳을 택하라 했습니다. 저는 천국이건 지옥이건 골프장이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지요. 그래서 제 소원대로 온 곳이 여기 지옥입니다.”
“여긴 파라다이스에요. 어찌 이런 곳이 지옥일 수가 있어요?”
그는 내 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푼다.
“지옥은... 골프장만 있고 골프채는 없는 곳입니다.”
바라만 보는 골프장이 있는 곳, 골프장은 있으되 골프는 할 수 없는 곳, 좋아하는 골프를 할 수 없는 이곳은 정녕 지옥인가...
그렇다면 골프장과 골프채,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필요한 것일까.  골프장만 있고 골프채는 없는 곳이 지옥이라면, 골프채만 있고 골프장은 없는 곳, 그 곳은 지옥인가 천국인가. 그리고 골프채도 골프장도 없는 곳은.
“제가 천국을 보여드리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가 내 손을 잡아 이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저자거리이다. 

행인의 왕래가 빈번한 지저분한 지하도에서 남루한 행색의 사내가 구걸을 하고 있다.
“저 거지의 천국은 바로 이곳이랍니다.”
도박 골프에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된 사람이라고 한다.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엎드려서 구걸을 하는데 깡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아니 홀에 공이 홀인 하는 소리를 하루에 18번이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듣는다고 한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 달려간 추억의 골프코스에서, 그린 위를 지쳐간 공이 상쾌하게 홀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깡통 안에는 돈이 고여있단다. 그러므로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하냐고, 나는 천국에서 사는 것이라고, 거지는 주장한단다. 

“어쩌면 천국과 지옥은 마음속에, 그리고 현실에 공존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물론  좋은 골프장에서 좋은 벗과 어우러져 골프를 즐긴다면 그야 말로 금상첨화, 그게 천국 중의 천국이겠지만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시퍼런 칼날이 하늘을 갈기갈기 찢는다. 뒤이어 달려온 뇌성벽력이 고막을 진동시킨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남자의 품으로 뛰어든다.
낮잠 속의 짧은 꿈이었나. 나는 놓쳐버린 퍼터를 줍고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공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빗발은 더욱 거세게 창문을 난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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