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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양말 한 짝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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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의 가방 안에는 공, 티, 그린포크, 비옷, 자외선 차단제, 장갑  등이 들어있을 것이다. 내 가방 속에는 몇 가지가 더 들어있다. 고무줄과 지사제(止瀉劑)와 양말이다.

지사제의 용도는, 술은 즐기지만 위장(胃腸)이 예민한 골퍼라면 알 것이다.
술을 마신 다음 날, 뱃속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꾸루룩 꾸루룩 요동치는 내장들을 정리정돈하려면, 화장실을 풀방구리에 쥐가 드나들 열심히 드나들어서 엊저녁에 마신 발효된 액체를 몸  밖으로 쏟아야 한다. 그러나 골프코스에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샴페인이 분출하려는 것을 코르크 마개로 막듯이, 효능이 강한 지사제로 막아줘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슬이 걷히지 않은 아침에 라운드를 하다가 젖은 신발의 앞부리가 입을 벌리는 통에 난감한 경우에 처한 적이 있다. 지혜롭게도 이런 상황을 예견했는지 고무줄을 가지고 다니는 동반자가 있었다. 나는 고무줄로 감발을 하고 나머지 라운드를 마쳤다. 양말은, 그렇게 지혜롭게 고무줄을 내게 빌려준 동반자의 뜻을 받들어 나도 남에게 선행을 베풀기 위해 가지고 다닌다.
철수씨와 나는 오래된 친구이다. 남자는 죽마고우 여자는 소꿉친구라고 한다는데, 철수씨는 땅따먹기도 같이하고 팔방놀이도 함께 했고 지금은 골프라운드를 같이하고 있으니, 무어라고 우리의 관계를 표현할지 잘 모르겠지만, 좌우간 징그럽게 케케묵은 친구이다. 

철수씨와 내가 총각 처녀 일 적이었다.
철수씨와 같이 영화를 보러갔는데 영화를 보다가 그가 사라져 버렸다. 영화가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서 나는 그가 일어나서 나가는 낌새도 못 잡았다. 화장실에 갔으려니 하고 기다렸는데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좌석의 밑도 살펴보고 안내원을 시켜 신사화장실의 문까지 다 열어보는 법석을 떨었지만 그는 없었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큼의 세월이 흐르도록 그의 증발은 완전범죄였다. 물론 그에게 연유를 묻기는 했었는데 얼굴만 붉힐 뿐 대답이 없었다. 나하고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보다가 앞자리에 앉은 애인을 발견했던 것일까, 아니면 빚쟁이에게 쫓겼던 것은 아닐까, 이런 궂은 상상이 들어 더 묻지도 못했다.
그의 증발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30여 년 전에 그가 양말을 한 짝 만 신은 채로, 극장 문을 나서는 것을 본 친구가 나타난 것이다. 영화를 본 날이 광복절이었고, 영화의 제목이 007 시리즈 중의 하나인 ‘썬더블 작전’이었기 때문에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철수씨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사람들은 트림이나 기침이나 방귀가 저절로 터져 나오는 것을 생리현상이라고 한다. 소변이나 설사를 어찌 참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골프라운드를 하면서 맥주를 즐겨 마신다. 그늘집에서 단숨에 500cc을 마셨더니, 다음 그늘집에 닿을 때까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우산 두 개를 들고 숲으로 들어가서 방광에 가득 찬 내용물을 비우고 나온 망측한 일도 있었다. 그런 경우, 나는 여자이니까 우산이 필요했지만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잠시 숲을 산책하고 나오는 것 같다. 오비라도 나주면 공을 찾는 척 울울한 잡풀을 헤치고 들어가 목적한 바를 해치울 것이다. 소변은 그렇다 치자.

며칠 전, 철수씨는 전날 과음을 했다며 아랫배를 문지르며 나타났다. 썩은 밤을 씹은 표정이었고 어기적대는 걸음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내기가 걸린 날 골퍼들이 앓는 전형적인 꾀병 중의 하나였다. 과음으로 인해 숙취가 안 가셨다는 등, 칼을 갈지 않아서 날에 녹이 슬었다는 등, 지난  번에 다친 인대가 완치가 안 되었다는 등의 공이 안 맞는 200가지 원인 중의 하나를 연출하고 있었다.
엄살과 흉물은 다 떨면서 가을 추수를 하듯 남의 지갑을 훑어가는 골퍼를 보면 드라이버 헤드로 한 대 갈겨주고 싶도록 얄밉다. 철수씨가 그런 엄살족이다.
철수씨는 무슨 약인지는 모르겠지만 허연 알약을 드링크제와 함께 넘기고 티잉그라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얼굴은 잔뜩 우그러뜨린 채로 첫 티샷을 날렸다.

나는 철수씨가 특이한 스윙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하체의 스웨이가 심했다. 왜글을 할 때부터 다리를 좌우로 출렁거리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샷을 ‘숭그리 당당 무당춤’ 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니었다. 철수씨는 하체를 고목처럼 고정시킨 채 샷을 하는 것이었다.
“구욷 샤앗..... 배 아프다는 것도 연극이었구만.”
누군가 빈정거리며 그렇게 말했지만 철수씨는 찌그러진 얼굴의 근육을 풀지 않고 티잉그라운드에서 내려왔다.

두 번째 홀에서도 그는 허벅지를 안 쪽으로 가위다리처럼 조이고 굳건하게 샷을 했다.
“그 사이에 원 포인트 레슨이라도 받았나 부네. 오늘은 숭그리 당당 무당 춤 안 추네.”
입까지 앙다물고 비장한 표정으로 훨훨 나는 공을 바라보는 그를 보고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파5의 3번 홀이었다. 철수씨의 공은 힘차게 직선으로 뻗어 페어웨이 한가운데 사뿐히 안착했다. 군자는 대로행이라고, 철수씨는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용감무쌍하고도 씩씩하게 걸어 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는 동반자들보다 뒤쳐져서 미적거리더니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공, 반듯하게 날아갔어요.”

나는 그가 공을 찾으러 가는 줄 알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손사래를 쳐서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두 번째 샷을 날리고 그를 기다렸다. 다른 동반자들도 그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3분, 아니 5분쯤 지났을까. 그가 날아갈 것처럼 상쾌한 웃음을 물고 숲에서 나왔다.
“공 찾는데도 3분밖에 시간을 안 주는데... 2벌타 아닌가?”
누군가 투덜거렸다.
“미안, 미안. 급한 용무가 있었어. 클맄을 줘요. 이거 잘 맞으면 그린에 오르겠죠?”

그는 동반자들에게 사과하고 캐디에게는 채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채를 넘겨받은 그가 두 번째 샷을 준비했다.
그때 나는 보았다. 빈스윙을 하는 그는 원래의 스윙폼으로 돌아와 숭그리 당당 무당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한 쪽 발에 양말을 신지 않고 있었다.
나는 철수씨가 클럽하우스에 나타났을 때부터의 정황을 차근차근히 정리해봤다.
아랫배를 문질렀고, 약을 먹었고, 급한 볼일이 있는 양 숲 속으로 들어갔고, 숲에서 나왔을 때는 양말 한 짝이 없었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철수씨, 막 폭발하려는 설사를 참는 식으로 항문의 괄약근을 꽉 조이고 샷을 해보세요. 그게 하체의 스웨이를 방지하는 최고의 방법이에요.”
어드레스를 하고 있는 골퍼에게 말을 거는 것은 에티켓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왼쪽만 맨발인 그에게 양말을 한 짝만 지금 당장 선물해야하나 두 짝을 다 같이 선물해야 하나, 갈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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