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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체력이 허락하는 한 죽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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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홀. 파(?). 핸디캡(?). 오직 신(神)만이 설계할 수 있는 홀이라고 일컬어짐. 골프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없더라도, 시각 청각 후각 촉각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홀. 페어웨이는 구릉과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음. 그린은 초봄의 갓 돋아난 풀잎같이 향긋한 내음을 풍기며, 누르면 즙이 흘러나올 것처럼 촉촉함. 특히 홀인되는 순간은 현악기의 현이 울리는 듯, 파르르 떠는 소리가 남.*** 

[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자주해도 질리지 않으므로 체력이 허락하는 한 죽는 날까지 한다.]


"생맥주....한 잔해야죠?"

입가의 거품을 혀로 핥으며 꺽정씨가 말한다. 18홀 라운드를 마쳤고 샤워까지 마쳤는데 어찌 생맥주로 목을 축이지 않을까 보냐.  클럽하우스의 식당에 들어와 의자를 당겨 앉기도 전에 흰 거품의 모자를 쓴 생맥주가 탁자에 놓인다. 

"민호씨, 오늘은 도망 안 가나요?"

경희가 민호씨를 놀리느라 하는 말이다. 민호씨는, 지금은 재혼을 해서 라운드 후에 느긋한 시간을 즐기지만, 데이트에 열을 올리던 지난해에는 급한 약속을 핑계로 사라져버리고는 했다. 

그런 민호씨를 볼 때마다 어느 골프광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 남자가 골프라운드를 마치고 애인과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각에서 무려 2시간이나 늦어버리게 되었다. 

"오늘은 정말 불상사가 일어났어. 자기가 이해를 해줘야 해."

화가 나서 핸드백을 들고 일어서는 여자를 붙잡으며 남자가 애원했다. 

"홀마다 몇 팀씩 밀려있었다는 얘기? 아니면 동반자가 이글턱을 냈는데 빠질 수 없었다는 얘기?"

남자의 애인은 골프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서당개 삼년에 풍월 읊는다고 골프 용어 몇 개는 알고 있었다. 

"자기도 알지? 내 친구 덕기말야. 걔가 같이 골프를 하다가 죽었어."

"뭐라구요? 친구가 죽어요? 그래서 장례를 치르느라 늦었단 말이죠?"

이 순간만을 얼렁뚱땅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여긴 여자는 한껏 빈정대면서 코웃음을 쳤다. 

"아니, 장례는 내일 치르기로 했지만.... 그 녀석이 10홀에서 퍼팅을 하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어. 상상을 좀 해 보라구. 그린에서 녀석을 끌어내리고, 드라이버 치고, 공 떨어진 곳까지 녀석을 옮기고, 거기서 다시 세컨샷을 하고, 또 시체를 옮기고, 퍼팅을 하고, 이렇게 나머지 홀을 시체를 끌고 다니면서 라운드를 마쳤으니 시간이 얼마나 걸렸겠어. 점수는 또 얼마나 엉망이었겠어."

이렇게 흉물을 떨었다고 한다. 

세간에 회자되는, 골프에 관한 우스개 중의 하나이다. 골프광에게는, 친구의 죽음보다도, 양귀비만큼 요염한 애인과의 약속보다도 골프가 우선한다는 점을 과장해서 지어낸 얘기임이 분명하다. 

물론 민호씨는 그런 얼토당토 안한 거짓말을 할 위인도 아니려니와, 친구의 죽음도 나 몰라라 하고 나머지 8홀을 마저 돌 미친 골프광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미워하는 후배가 있다. 내가 그녀를 미워하는 이유는, 선약을 깨고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 나와 철통같이 약속을 해놓고도 남자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 만사 젖히고 달려간다. 여자가 남자에게 버티는 맛도 있어야 할 텐데 남자가 당기면 당기는 대로 끌려간다. 그녀는 아마도 남자친구에게 나하고의 선약을 팽개치고 달려왔다고 야스락거릴 것이다. 

"넌 자존심도 없니?"

내가 꾸짖으면 그녀는 언니 미안해, 를 연발하다가 주저하며 말을 꿴다. 

"시집가야 하잖아."

하기야 나이가 마흔에 가까운 노처녀에게 결혼이란 최급선무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녀의 배신을 못 참겠기에 매번 심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언니, 그 사람이 나 사랑한다고 했어. 결혼하자고 했어."

나를 팽개치고, 선불 맞은 송아지처럼 달려 나가더니 돌아와서 너스레를 늘어놓았다. 

"그래, 그 사랑 타령, 언제 한 거야? 차 마시면서? 술 마시면서? 섹스 도중에?"

나는 심사가 꼬여서 듣기에 거북한 언사도 걸러내지 않고 뱉었다. 

"아냐. 나 며칠 전에 그이가 머리 얹어줬잖아. 결혼해서 같이 골프하자고 했단 말이야."

후배는 막 골프에 입문하던 참이라 골프의 블랙홀 같은 흡인력을 모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배워보라고 권하던 운동이니까, 애인 따라서 연습장 출입을 하다가 엉겁결에 머리를 얹은 것이다. 

데이트에 바쁘고 생업에 쫓기는 그녀를, 나도 자주 만날 시간이 없어서 피차에 소원하게 보냈는데, 몇 달 후에 그녀에게서 결혼 청첩장이 날아왔다. 

"한반도에 장마전선이 지나갈 때로구만.... 비가 온다고 결혼식을 못할 것은 없지만서두..."

그 동안 이 언니에게 전화도 없이, 둘이서 닭살 돋게 놀아나는 꼴이 마땅치 않아서 고운소리가 안나왔다. 

"언니, 어떻게 알았지? 실은 기상청에 물어봐서 천둥 번개 칠 확률이 높은 날로 잡았어."

"요강단지에 사과를 넣어가지고 시집을 가면 금슬이 좋아진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천둥 번개 치는 날 결혼식 올리면 깨소금 쏟아진다는 유언비어는 금시초문인데?"

"아냐, 우린 그런 속설은 안 믿어."

"오호라,  네 신랑 친구들이 비가 오는 날이라야 골프 못하고 예식에 참석할 테니까?"

"그게 아니라 친구들 공치는데 우리만 심심하게 결혼식하고 있으려면 억울하잖아."

불과 반 년만에, 사람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싶었다. 그녀도, 따분한 결혼식보다는 필드에서 공을 치는 편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할 만치 골프에 빠져버린 것이다. 

인생의 선배로써, 골프의 선배로써 내가 그녀에게 해줄 말이란, 잘 먹고 잘 살아라, 밖에 없었다. 덧붙인다면, 건강을 위하여 낮에는 열심히 (공을)치고, 금슬을 위하여 밤에는 열심히 하고....

며칠 전, 그녀는 전화 속에서 말했다. 

"언니, 우리 그이는 말이야. 누가 골퍼 아니랄까봐 밤마다 홀인원이야. 단번에 홀인이라니까."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는데, 곱씹다 보니 말의 뜻이 잡혀주었다. 

"솔직히, 홀인원이란 일생에 한 번이나 할까 말까하기 때문에 값진 거야. 페어웨이를 두루 탐사하면서 새가 우짖는 소리도 듣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삭막한 벙커에서 헤매고, 풀숲에서 길도 잃어봐야, 골프가 맛있고 재미있는 줄을 알게 되는 거지. 니 남편에게 전해. 홀인원만 좋아하지 말라고...."

"김작가가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맞춰볼까?"

꺽정씨가 어깨를 툭치는 바람에 후배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꺽정씨가 싱글싱글 웃음을 물고 있다. 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지만 짐짓 다른 소리로 둘러댔다.

"오늘, 어느 홀에서 실수가 많았던가 돌이켜 복습하고 있었어요. 퍼팅... 역시 퍼팅이 난조였어요. 구멍 찾아 넣는 것은 역시 꺽정씨를 따를 사람이 없음도 새삼 깨달았고."

"퍼팅은 내기를 해야 늘어요. 신중해지거든요. 다음번은 옷 벗기 내기합시다."

"옷 벗기 내기보다는 옷 입기 내기가 낫지 않겠어요? 애초에 아담과 이브처럼 다 벗고 시작해 봐요."

꺽정씨와 경희의,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농담에, 19홀에도 웃음꽃이 만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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