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신명나고 어깨가 들썩이기 보다 왠지 답답함이 앞서는 새해다. 언론은 새해를 작년보다 못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을 장식한 한자성어 '밀운불우(密雲不雨)'는 말그대로 구름은 끼었으나 비가오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었는데.
하지만 홍수처럼 쏟아진 신년 축하카드와 정당들의 수많은 신년보도자료 속에서 뒤늦게 기자가 발견한 한 국회의원의 편지는 암담한 새해를 비추는 한줄기 빛처럼 신선했다.
'나는 돈을 벌지 않겠다'.
지난해 7.26재선거에서 당선한 한나라당 경기 부천소사의 차명진(47)의원. 자신이 손수 그린 그림일기와 함께 기자에게 보내진 차 의원의 이 편지 제목은 보는 순간부터 눈길을 끌어 당겼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첫 월급을 받던 날 나는 아내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다짐을 했다. 국회의원 된 것도 일생일대의 복 받은 일이다. 그러니 국회의원 자리를 이용해 돈을 벌 궁리는 아예 하지 말자.
우선 후원금에 목 내걸고 살지 않기로 했다. 정당한 후원금은 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 하겠지만 꼬리 안 달린 돈이 있는가? 솔직히 공식적인 후원금도 금액이 큰 것은 대부분 대가성이 있다. 그런 돈 들어오면 괜히 내가 부담스럽다.
십만 원짜리 소액 후원금은 격려성이 대부분이고 그 정도 돈 주고서 대가를 바라지야 않겠지만, 내가 이제 보궐로 당선된 사람이 무슨 격려를 받을 만큼 내놓을 것도 없다.
그러니 소액다수 후원금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 보좌관이 소액후원금 모아보겠다고 열심히 뛰어 다니는데 나는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그래서 내 월급을 몽땅 털어서 쓰기로 했다. 육백만원의 절반인 삼백만원은 지구당 운영에, 나머지의 절반인 백오십만원은 빌린 돈 이자 갚는 데에, 그리고 나머지는 내 활동비에 쓰기로 했다.
차량운영비로 나오는 돈 이백만원은 새로 뽑은 아반떼 차량 리스비와 기름값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지역구의 국회의원 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한 의정보고서 발간이나 회의비용 등은 후원금을 모금해 충당하기로 했다.
마누라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 집 생활비는 마누라가 사회복지사를 하면서 벌어오는 쥐꼬리만한 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국회의원을 하면서 어떤 유혹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겨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들께 봉사하는 신성하고 명예로운 자리이다. 지위를 이용해 권세 부리거나 돈을 버는 자리가 아니다. 이러다가 노후는 어떻게 하나?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후대책이 없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차 의원의 편지가 정해년 새해를 맞는 그저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런지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 '아무개'에게 후원해 주십시오라는 너무나 많은 촉구편지를 받았던 기자에게 분명 차 의원의 '돈벌지 않겠다'는 편지는 신선하고 또 충격적이었다.
헤쳐모여식 통합신당 얘기, 경선 줄서기, 대통령 '나요 나'를 외치며 앞다퉈 언론의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 속에서 묵묵히 '돈벌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초선의원 차 의원.
아마도 지금 연말연시를 빠듯하게 보내고 또 맞으며 유리지갑 속 고작 만원짜리 지폐 한장 뿐일 수많은 사람들에겐 당신의 한마디가 어느 정치가의 호언장담보다 더 먼저 지갑안에 넣어두고 싶을 '희망'일 듯 싶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