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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벽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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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홀: 파3. 148미터. 핸디캡 17. 오른 쪽은 병풍을 둘러 친 듯한 산, 왼 쪽은 오비, 내리막 경사의 막바지에 그린이 있음. 그린의 앞쪽과 뒤쪽은 벙커. 티샷이 짧아도 벙커에 빠지고, 길어도 벙커에 빠짐. 공을 오뚝이처럼 세울 수 있어야 단번에 그린에 공을 올릴 수 있음.*** 

[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벽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앞조가 진행을 못하고 멈춰서 있다. 아무래도 새치기조 때문에 진행에 차질이 있나보다. 이렇게 밀려있을 때면 대화로써 긴장을 풀어야 한다.  

"요즘 차.. 뭐타고 다녀요?"

꺽정씨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 일년에 한차례씩은 차를 바꾼다. 그러기에 경희가 묻는 말이다. 

"국산차 애용 차원에서 그랜저를 탑니다."

"오호...  그랜저를 타시는군요. 그럼 그랜저 안에서 머머 했다, 를 여섯 자로 표현하면 어떻게 되죠?"

"깊고 중후한 맛."

"그럼 티코 타고 머머 한 것을 다시 여섯 자로 줄이면요?"

"좁은데 욕봤다.  근데 경희씨, 자꾸 케케묵은 우스개나 재탕 할 것인가요?"

"학습 진도를 나가기 위한 복습이었어요.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볼 게요. 꺽정씨, 숲속에서 해봤어요?"

"숲속에서요?"

"그래요. 숲속에서 해봤냐니까요."

"해봤죠."

"소감을 한 말씀 들을 수 있을까요?"

"무릎만 까졌죠. 돌멩이가 많이 있어서. 상대는 허리의 살갗이 벗겨지고...."

"흐음... 숲속에서 해를 보는데 무릎까지 까져요? 왜 무릎이 까지고 허리의 살갗이 벗겨지는지 전 도통 이해할 수 없는데요. 제 경험을 말씀드리죠. 전 숲속에서 해를 바라봤을 때가 저녁 무렵이었어요. 나뭇잎 사이로 석양의 노을이 아름답기만 하던데요. 낙엽 썩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오기도 하고."

그때서야  민호씨와 꺽정씨가 웃음보를 터뜨린다. 

"싸인 주고 있어요. 오너분, 준비하세요."

캐디의 부름에 캐리오너인 꺽정씨가 뛰어올라갔다. 높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있는 꺽정씨가 개선장군 같다. 골프를 잘 한다는 것 하나로 저렇게 늠름해 보일 수가 있을까. 우리 셋은 낮은 지대에서 그를 우러러보고 있다. 

꺽정씨는 관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한다. 뒤핀이지만 내리막 경사를 고려해서 핀까지의 거리를 140미터 정도로 어림했을 것이다. 

꺽정씨의 공은 곧장 핀을 향해 날아간다. 그린 위에 떨어진 공이 앞쪽으로 한 뼘이나 굴렀을까. 꺽정씨는 내리막경사의 끝에 위치한 우표딱지만한 그린 위에 공을 세우는 기술을 보여준 것이다. 

앞조의 남자들이 들고 있던 퍼터를 깃대처럼 들어올려 그의 공이 그린에 안착했음을 알려준다. 

"역시 잘 세운다. 잘 세워. 근데 꺽정씨말야. 밤에도 잘 세울까? 입으로는 무릎까지고 허리껍질 벗겨지고 어쩌고 해쌓지만... 원래 남자들이란 뻥이 쎄잖아."

"꺽정씨 특기가 퍼팅인거 알지? 세우는 기술보다 넣는 기술이 죽여주잖아."

채를 들고 티잉그라운드로 올라가던 민호씨가 경희와 나를 흘겨본다. 우리는 목소리를 낮추어서 속삭였는데, 민호씨는 귀가 밝은가 보다. 

민호씨가 친 공은 하늘높이 치솟는다. 역시 민호씨는 예민하다. 점잖지 못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금방 샷이 흔들린다. 

"호호... 너 저렇게 로켓처럼 하늘로 쏘아 올리는 공을 뭐래는 줄 아니? 앤젤 래퍼(Angel raper), 천사 강간범이라고 해. 민호씨는 그쪽에 특기가 있나봐. 그러니까 젊은 마누라 데리고 살지."

경희가 키득거리면서 티잉그라운드에 오른다. 그런 경희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걱정스럽다. 남을 비난하다가 자신의 샷을 망치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희는 뒤땅을 사납게 친다. 티타늄 헤드가 플라스틱 재질의 매트에서 정전기를 일으켜 번쩍 불꽃이 튄다. 

"하하... 경희씨 그런 땅볼은 뭐래는 줄 알아요? 퀘일 하이(quail high), 메추라기 볼이라고 하죠. 자꾸 오리가슴인지 오르가슴인지를 밝히니까, 공도 메추라기처럼 기어가는 겁니다."

정말로 경희의 공은 메추라기처럼 종종걸음을 치더니 그린근처에서 멈춘다. 

민호씨와 경희의 실타(失打)가 나에게도 압력을 준다. 나는 4번 우드와 5번 우드사이에서 갈등한다. 풀을 뜯어 허공에 날려본다. 맥없이 그냥 떨어진다. 바람의 세기는 고려할 여지가 없다. 5번 우드를 잡기로 한다. 

고민 끝에 잡았더니 역시 빗맞는다. 공이 날아갈 방향은 공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공은 제 기분대로 간다. 공은 오른 쪽으로 산책길을 정한 것 같다. 산 속에서 세상 시름 다 잊고 홀로 쉬고 싶은가 보다. 

"너나 좀 잘하지. 너 바나나 좋아하니? 아니면 바나나 닮은 물건을 좋아하니? 바나나 슬라이스(Banana slice)를 내다니..."

경희가 혀를 끌끌 찬다. 타인의 불행은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꺽정씨는 기쁨의 표정을 억제하고 있다. 못된 인간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나는 오늘 재수가 좋다. 공의 산책길을 병풍 같은 산이 막아주었다. 깎아 세운 듯한 바위에 맞은 공은 어 뜨거라  비명을 지르며 그린으로 뛰어 들어온다. 앞조의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봤어요? 저게 바로 벽치기랍니다. 저처럼 벽치기 해봤어요?"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혀를 낼름 빼문다. 

"김작가 특기가 벽치기인 줄 몰랐는데... 다년간의 경험에서 익힌 기술이겠죠?"

나는 물론이죠, 라고 대답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린 쪽으로 달려간다. 티잉그라운드에서 가늠한 거리는 내공이 더 가까웠는데 막상 그린에 올라보니 꺽정씨 공이 더 깃대에 가깝다. 

꺽정씨의 공은 발끝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들어갈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직 행운의 여신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음을 믿고 있다. 오랜만에 버디의 예감이 든다. 

"제주도 온 인걸. 김작가,  있는 힘껏 꾹 눌러서 밀어 보내요."

꺽정씨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한다. 내 퍼팅솜씨를 비웃는 것이다. 꺽정씨의 방해공작에 말려들면 안 된다. 

나는 장갑을 벗고 손금의 고랑에 고인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는다. 여린 새 한 마리가 손아귀에 들어있는 듯, 가만히 그립을 쥔다. 파란 잔디 위에 애처롭게 놓여있는 공을 바라본다. 

하얀 공의 숨결이 느껴진다. 쳤는가. 모르겠다. 나는 내 마음을 퍼터에 실어 공에게 전했다. 공은 저 스스로 굴러갔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어? 어? 버디잖아."

세상의 골퍼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은, 홀에 공이 떨어지는 '딸그랑' 소리, 그리고 동반자가 외쳐주는 '나이스 버디'.....

"나이스 버디이이...."

경희는 손뼉까지 치며 제 일인 듯 기뻐해 준다. 

"벽치기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뒷문입장도 능하시군...."

나는 눈을 감고 있어서 공이 홀에 들어가는 순간을 놓쳤는데 꺽정씨의 빈정거림대로라면 아마도 구멍의 뒤편을 때리고 안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모로 가더라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오오, 사랑스럽도다. 그대 이름은 버디....."

나는 공을 집어 들고 입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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