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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클라이맥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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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홀. 파5. 489미터. 핸디캡2. 산자락의 지형을 이용한 페어웨이가 이채로움. 페어웨이는 그린까지 가파른 오르막이면서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흐르고 있음. 또한 오른쪽으로 굴러 내려오는 공을 주식으로 삼는 악마 같은 벙커가 5개나 아가리를 벌리고 있음. ***


[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클라이맥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한다.]

나는 9홀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지레 힘이 빠진다. 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고 느껴진다. 깃발이 펄럭이는 고지까지 헐떡거리며 공을 치고 또 쳐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차다. 그리스 신화 속의 시시포스처럼 헛된 노력을 하는 것만 같다. 아니 오늘만 그렇다.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있다는 건 고통스럽다. 낭떠러지에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듯하다. 

전 홀에서 승헌씨가 나를 알아봤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두방망이질 치던 가슴의 박동이 가라앉지 않는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내 곁을 맴돌면서 따라오고 있다. 그가 보낸 전령인가. 나는 자꾸 뒤돌아본다. 

외로움은 상황이 아니라 감정이다. 개선하는 나폴레옹도 외롭다고 했다. 승헌씨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나를 고독에 휩싸이게 한다. 

"18홀, 4시간 이상 걸리는 플레이 중에서 실제 샷으로 소요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민호씨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민호씨는 어디선가 난센스 퀴즈를 잘 물어 와서 좌중을 한바탕 웃기는 재주가 있다. 나는 또 객 적은 장난인가 싶어 잔머리를 굴려본다. 글쎄, 몇 분쯤이나 될까. 

"엊저녁에 책에서 읽었는데요. 겨우 3분 남짓이래요. 나머지 4시간은 생각하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계산하고 분발하고 자신을 굳히고 때로는 의기소침하며 낙담하고 자포자기하는 심리변화의 시간들이랍니다."

"어떻게 그렇게 긴 문장을 외웠어요?"

경희가 토끼처럼 동그란 눈을 하고 민호를 바라본다. 

나는 지금 골프에 대해서가 아니라 승헌씨를 생각하고 있다. 그에게 한 행동을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다. 앞으로 그와의 관계를 계산하고 분발하자고 다짐한다. 

"그 글을 읽으면서 3분 남짓을 샷을 하려고 4시간을 넘게 심혈을 기울이는 스포츠는 골프, 그리고 섹스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븐 파를 친다고 해도 72번 채를 휘두르는데 3분이면 족하고, 섹스도 18번 오르가슴의 소요시간을 다 합해도 3분을 넘지 못할 테고..."

승헌씨 앞에서 의기소침하고 낙담하고 자포자기하는 내가 바보 같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발끝으로 땅을 판다. 

"골프의 클라이맥스는 퍼팅이고, 섹스의 클라이맥스는 오르가슴인데..."

분명, 꺽정씨가 날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그래서 퍼팅하다가도 심장마비, 머머하다가도 복상사 심장마비래요?"

"지난겨울 여기서 퍼팅하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신부님 있잖아. 그럼 신부님도 오르가슴을 느끼시다가 심장에 마비가 온 걸까?"

"난, 오르가슴은 싫어요. 심근경색을 일으켜서 죽은 오리가슴이 맛있다니까... 오늘 19홀은 오리진흙구이로 합시다."

경희와 꺽정씨가 셔틀콕을 맞받아치듯이 대거리하는 본새를 나는 귓등으로 흘려듣고 있다. 

그린에 오르면서 산 아래로 눈을 돌리니 티잉그라운드에서 승헌씨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보느라 풀을 뜯어 허공에 날리고 있다. 아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동작이리라. 나도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싶다. 

"그린에서 보는 모습이 제일 이뻐요."

언젠가 승헌씨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귀에 날아와 앉는 그의 목소리보다 기름을 부은 등잔처럼 불꽃이 화악 피어오르는 그의 눈빛을 먼저 감지했다. 그는 내가 칩샷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특기는 어프로치 샷이다. 스윙의 회전반경이 크고, 꼬임이 깊숙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에 나는 드라이버나 아이언의 비거리가 남보다 길지 못하다.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아무리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낼 수 있어도 비거리가 짧으므로 파4홀에서 파온 되는 경우가 드물다. 보기플레이어 일 수 밖에 없다. 

드라이버나 아이언샷이 남성적이라면 어프로치샷과 퍼팅은 여성적이다. 전자는 힘이, 후자는 기술적인 정교함이 필수이다. 남성의 매력은 남성다움이고 여성의 매력은 여성다움이지 않던가. 

나는 필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구책으로 힘 안 드는 부문에서 장기를 갖추고자 했다. 그래서 피칭웨지와 샌드웨지를 길들이는 데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승헌씨 앞에서 어프로치를 시도할라치면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고, 후들후들 다리가 떨리고 오줌을 지릴 것처럼 긴장하는 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른 곳에선 절 본 일이 거의 없잖아요.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이라던가, 댄스파티에서 드레스 입고 춤추는 모습이라던가.... 좀 말하긴 그렇지만..... 침실이라든가."

그의 눈빛을 읽지 않았더라도, 깃대를 간질이려고 공이 슬금슬금 굴러가는 순간 나는 하나밖에 안 남은 속옷이 벗겨지는 느낌이었기에 그런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다. 

당구 게임을 하면서, 저속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애인 팬티 벗기듯이'라는 말을 쓴다. 정성을 다하여 조심스럽게 사알짝 비껴가듯이 공을 맞추라는 뜻이리라. 

공이 깃대에 붙어있다. 고개를 갸웃이 숙이고 구멍 속으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볼은 나의 분신이다. 나의 모든 의지를 구체화한 것이다. 스윙은 나의 메시지를 볼에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라고 했던 미국의 프로골퍼 벤 호건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전하고자하는, 그러나 전해서는 안 되는 메시지를 승헌씨에게 들킨 것만 같아 나는 얼굴부터 붉어진다. 

내가 불순한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불순한 생각까지는 괜찮다. 말로, 행동으로만 옮기지 않는다면, 내가 외간남자와 연애를 꿈꾸든 살인을 계획하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눈은 마음의 창이고, 입은 머릿속의 생각을 까발린다. 나는 촉촉하게 젖은 눈에 마음속의 메시지를 실어 그에게 전해서도 안 되고, 침실 운운 따위로 그를 유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심장마비 일으키겠네... 이글인 줄 알았잖아요."

경희의 외침에 뒤돌아보니 꺽정씨의 칩샷이 깃대를 스쳐 한 뼘도 안 되는 곳에 멈추고 있었다. 정말로 꺽정씨는 외모와는 달리 '애인 팬티 벗기듯이' 지극히 부드럽게 공을 굴려 깃대에 바짝 붙인 것이다. 나는 승헌씨의 생각에 사로잡혀 시이불견(視而不見)이었다.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멍해진다. 꺽정씨에게 이글을 맞을 뻔해서 일어난 증상은 아니다. 오로지 승헌씨 탓이다. 

흔히 골프를 집중의 게임이라고 하는데 집중의 극치는 무(無)에 집중하는 것이라 한다. 정신집중이란 목적의 완전수행을 위해 플레이 중에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자문한다. 

"나 지금 골프하는 것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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