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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전화벨이 울리면 들어가던 것도 안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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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홀. 파3. 159미터. 핸디캡12. 오르막이라 뒷핀일 경우 깃발만 겨우 보임. 보자기를 펼쳐 덮은 듯한 포대그린이라 자칫 길게 쳐서 공을 뒤쪽 풀숲으로 빠뜨리면 파는 날아간 파랑새. ***


[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전화벨이 울리면 들어가던 것도 안 들어간다.]


민호씨는 5홀에서 버디, 6홀에서는 꺽정씨와 같이 파를 했다. 민호씨가 캐리 오너이다.

"깃대가 잘 안보이시죠? 그린 중앙을 향해서 치세요."

젊음은 생기가 있어서 좋다. 캐디의 목소리가 즙 많은 참배처럼 사근사근하다. 

"이 경훈씨 홀인원 기념식수쪽으로 치란 말이죠?"

캐디의 지시에 민호씨가 아무 생각이 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요. 가신 분은 가셨지만...."

사근사근하던 참배가 갑자기 풀이 죽어버린다. 

경훈씨는 민호씨의 친구이다. 아니 친구였다. 그는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도중에 핸드폰을 받다가 시멘트로 만든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댄 채로 이틀인가 더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 

사고 시각에 그와 통화를 하고 있던 사람은 수화기 속에서 튀어나오는 그의 비명을 들었다. 사고 차량의 조수석에서 뚜껑이 열린 채로 나뒹굴고 있는 그의 핸디폰이 정황을 증언해 주었다.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같이 라운드를 하던 죽마고우였으니 만큼 민호씨는 경훈씨의 홀인원 기념식수를 보면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그의 산소에 온 기분이에요 그날도 우린 같이 라운드를 할 작정이었죠. 티오프 시각이 되어도 안 나타나기에 별의별 욕을 하며 씹어대고 있었거든요."

모두가 숙연해 지고 있었다. 

"골프약속은 본인 사망이나 작은 댁 해산 이외에는 펑크의 이유가 없다고 장난삼아 다짐을 했는데... 벌금 대신 술을 사라고 전화를 했더니....그런 비보가 기다릴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참 좋은 친구였죠."

라운드 내내 경훈씨는 도마에 올라 난도질을 당했다고 한다. 

"골프 친구가 사라지는 날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던데... 공통의 추억, 함께 당한 괴로움, 불화와 화해 같은 마음의 격동 등이 보물처럼 소중했다는 걸 그가 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렇다. 포도주와 우정은 오래 묵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오랜 친구를 대신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정이란 나무는 잘 자라지 않는다. 어제 소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오늘 그 그늘 밑에서 쉴 수는 없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므로 누구나 칭찬만 한다. 민호씨도 경훈씨의 생존 시에는 가끔은 비난도 했었는데 지금은 띄워주고 있다. 

"정말이에요. 40살이 넘으면 형님 아우가 없다던데, 먼저 가서 눕는 사람이 형님이래요."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답니다."

"이렇게 펄펄 살아서 공 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복 받은 인간들이라고..."

제각기 한마디씩 살아있음을 찬미한다. 

감기가 들었는가, 오열을 참고 있는 것인가. 티를 꼽으며 민호씨가 쿨적댄다. 

"민호야. 너 감기기운 있는 걸 보니 엊저녁에 빨가벗고 잤구나. 어린 마나님 지극정성으로 모시느라고...."

꺽정씨가 또 우스갯소리를 뱉는다. 웃음의 낱알들이 푸른 하늘로 솟았다가 잔디위로 위로 하나씩 떨어진다. 

민호씨가 티에 공을 올려놓고 다시 내려온다. 앞 조가 아직 홀아웃을 하지 않았다. 앞 조는 내기 골프를 하는지 그린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상당하다. 

"마누라에게 지극정성 어쩌구 하니까 하는 말인데...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결혼도 골프처럼 헌신을 요구하죠. 용맹한 롱샷이 필요하고, 지극하게 정성들인 터치도 필수이고... 물론 완벽한 결혼도 없겠지만, 만족한 골프도 드물죠. 

정말 골프 배우고 나서, 골프하고 결혼생활하고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결혼에 실패한 경험담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실수가 발단이 되어서 결혼이 파멸되는 수도 있듯이 한번의 잘못된 샷으로 기분이 상하면 전체 라운드를 망치기도 하잖아요. 우정도 마찬가지에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홀인원 기념식수를 응시한다. 소나무는 친구의 옛날 모습을 상기시키며 묘비처럼 서있다. 

"그 친구가 순간의 실수... 전화기에 대고 악을 쓰는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화나는 일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흥분하지 않고 침착했더라면... 모두들, 그런 악몽의 결과까지는 없었으리라 생각하죠.

그린에 깃대가 바로 세워졌다. 앞 조가 그린을 비웠다. 

민호씨가 때린 공이 둔탁한 타격음을 남기고 날아갔다. 공은 그린에지에서 주춤거리다가 멈추고 만다. 

민호씨의 특기는 아이언 샷이다. 민호씨는 죽은 경훈씨를 제압하기 위해 두꺼운 책 위에 공을 올려놓고 책장이 한 장씩 찢겨 나가게 아이언 샷을 연습했다. 민호씨의 집념을 눈치 챈 경훈씨도 피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성취목표가 사라진 때문이지 경훈씨의 사고 이후 민호씨의 아이언 샷도 녹이 슬었다.  민호씨가 어프로치마저도 실수를 한다. 공이 개구리처럼 풀석 뛰어올랐다가 주저앉고 만다. 이 홀은 핸디캡 12의 비교적 난이도가 적은 홀이다. 민호씨의 연속 실수는 처음 본다. 

"그 친구와 세 번 라운드에 두 번은 제가 졌죠. 그 친구를 제압하는 날이 도약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혼자서 칼을 갈았는데... "

소나무 밑동에서 겁먹은 눈을 굴리던 청설모가 잽싸게 나무를 타고 사라진다. 솔방울 하나가 힘없이 떨어진다. 

슬픔에 겨워 수다스러워지는 민호씨를 꺽정씨가 가로막고 나섰다. 

"김작가, 우리가 맨 날 이렇게 아웅다웅 싸워도, 김작가하고 나하곤 악연으로 얽힌 골프친구 아닙니까?"

꺽정씨가 은근슬쩍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누가 아니라고 했나요? 칠성 판 쓰고 눕는 날까지 버텨봅시다."

나는 어깨에 붙은 벌레인양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만을 이용하여 그의 두꺼운 손을 집어낸다.

"공치다가 죽은, 아니 공치러 오다가 죽은 영혼을 위하여 묵념합시다."

민호씨가 퍼터를 지팡이 삼아 짚고 고개를 꺾으며 엄숙하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모자를 벗고 묵념을 한다. 

그때였다. 경건해 지려는 분위기를 깨는 방정맞은 소리가 있었다. 자발스럽게 울리는 꺽정시의 핸드폰이다. 전자음의 가락으로 흘러나오는 밀양아리랑이었다. 날 좀 보소오.. 날 좀 보소오... 날좀 보소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그 전화소리 때문에 들어가던 공이 놀래서 다시 기어 나오잖아요. 공 칠 때는 전화 좀 꺼야죠."

50센티미터도 안되는 퍼팅을 놓친 경희가 악장치듯 꺽정씨를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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