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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고수들이 터득한 바로는, 짧은 것보다는 긴 것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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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고수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바로는, 짧은 것보다는 긴 것이 좋다고 한다.]

***4홀. 파3. 142미터. 핸디캡14. 오르막 끝에 그린이 있음. 그린 바로 앞에 벙커가 위협적임. 슬라이스가 나면 공이 잡풀더미에 묻힘. 왼쪽으로 휘는 공은 그늘집의 유리창을 깰 위험도 있음***

하늘이 옥양목처럼 하얗게 바래고 있다. 어느 여인네가 저다지도 정갈하게 빨래를 해서 널었을까. 수정처럼 투명하고 진주조개처럼 그윽하게 푸르다. 나뭇잎에 시를 한 수 적어 창공에 띄우면 조그만 조각배가 되어 에돌다가 그리운 벗에게 닿을 것 같다. 먼 나라,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내 그리운 벗은 하늘의 기슭에 걸린 나뭇잎배를 보고 나를 떠올려줄까. 

회초리가 지나가는 듯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클럽헤드가 공을 타격하는 명징한 음향에 나는 얼른 팔던 한눈을 접는다. 꺽정씨의 공이 깃대를 향해 곧장 날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깝게도 짧다. 귓전에서 울리던 상큼한 타격음으로 미루어 절대로 짧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꺽정씨 같은 고수가 핀은 그린의 뒤쪽에 꽂혀있으며, 가파른 오르막 경사며, 맞바람이 분다는 것을 몰랐을까. 

"아무리 뒷핀이어도 여기선 길게 안칩니다."

꺽정씨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티잉그라운드에서 내려왔다. 

"지난겨울에 그린이 얼었을 때였는데, 그린에서 튄 공이 그늘집에서 나오던 앞 조 사람들을 때렸죠." 

꺽정씨가 그린에 못 미치게 친 까닭을 민호씨가 설명했다. 

"어마나, 그런 불상사가 있었어요?"

"사람은 안 다쳤어요?"

화들짝 놀라서 경희와 내가 동시에 외쳤다. 

"큰 사고였어요. 보험회사에서 사고 수습은 해줬는데, 다친 사람은 두 달 동안이나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녔어요. 우리 쪽에선 아무 잘못이 없었기에..."

침을 튀기며 친구의 입장을 변호하는 민호씨의 말을 자르며 끼어 들어온 꺽정씨의 일갈이 가관이었다.

"그 날 그 사고 때문에 여기 파3홀에서 트리플보기를, 그러니까 양파를 했다는 거 아닙니까."

기가 막혀 벌어진 입이 안 닫혔다. 하긴, 10홀에서 동반자가 심장마비로 죽었는데도 시체를 옮겨가며 18홀을 마무리했다고 자랑하는 엽기적인 골퍼도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타인을 병신으로 만들 뻔한 사고보다 자신의 트리플보기가 더 치명적이라고 믿는 꺽정씨는 아직 정신병원에 갈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시체를 끌고 나머지 여덟 홀을 더 돈 사람과 사고 때문에 트리플보기를 했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꺽정씨와 누가 더 골프에 미치광이인지를 가른다면, 꺽정씨 쪽이 아직 이빨도 안 난 젖먹이일 것이다. 

정말 같은 거짓말인지 거짓말 같은 정말인지 모르겠다. 저들은 내가 골프를 하다가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글로 쓴다니까 딴에는 소재를 제공해준답시고 별의별 희한한 얘기들을 물어오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얘기는 그만하고 공 칩시다."

꺽정씨의 진담과 농담이 구분되지 않아서 정신을 놓고 있다가, 경희가 떠밀어서야 티잉그라운드에 올라갔다. 

내 3번 우드의 비거리는 150미터 정도이다. 오르막이므로 공이 그린의 둔덕을 친다면 굴러서 올라갈 것이다.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선 내 얼굴을 향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나는 3번과 4번 우드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갈등한다. 

문득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불러 세계를 감동시킨 빙크로스비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비거리로 허세를 떠는 골퍼를 경멸했다. 

=정말로 골프를 사랑하고 또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3번 아이언으로 150야드에 정확하게 볼을 옮겨놓은 수 있는 기량을 가진 골퍼이다. 9번이 무리라면 8번으로 친대서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그의 주장은 명쾌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스크래치 플레이어의 솜씨를 유지했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긴게 낫겠죠? 짧은 것보다는? 바람도 맞은편에서 불어오고...”

나는 티의 키를 키웠다. 티를 높이면 공은 높게 날겠지만 거리는 좀 손해를 볼 것이다. 

"긴 걸 선호하는 줄은 몰랐는데..."

나는 분명 캐디에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꺽정씨가 참견한다. 오랫동안 조용하다 싶었다. 첫홀에서의 내가 던진 훼방에 대한 복수이다.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지 30분이 넘게 고심했을 것이다.  

"짧아서 못 미치느니 보다는 홀을 지나가는 공이 낫겠죠. 못 미치면 들어갈 수 없으니까. 네버럽 네버인(never up, never in)이라잖아요."

나는 전 홀에서도 파를 잡았다. 자신감이 붙는 중이다. 자신감이 도사리는 날은 핀까지의 거리가 짧아 보이고 컵이 크게 보인다. 중압감이 마음을 억누르게 되면 공이 작아 보이고 거리까지 멀어 보이며 실타를 연발하게 된다. 그린에 파인 컵이 간장종지 보다 작아보여서 퍼팅이 흔들린다. 

"닿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여자들이 긴 거 너무 밝히네..."

꺽정씨도 그런 말을 하면서 얼굴을 붉힌다. 캐디들이 뒤로 돌아서서 배꼽을 잡고 웃고 있다. 

"그래도 긴 게 나아. 길게 쳐."

경희가 거들었다. 나는 핀을 지나쳐 보내기로 결정했다. 3번 우드를 선택했다. 공이 높게 날아 길게 떨어진다. 

그린에 올라가보니 내 공은 그린을 조금 지나쳐 에지에 걸려있다. 꺽정씨는 어프로우치도 짧았다. 깃대까지 족히 2미터는 될 것 같다.

"흥, 꺽정씨는 짧은 쪽을 선호하나 본데... 자신 것이 짧아서 그런가...."

그린의 경사를 읽느라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꺽정씨의 귀에 대고 내가 속삭였다. 그는 말뜻을 얼른 잡지 못하고 있다. 

"못 들었으면 통과합시다."

생급스럽게 나를 올려다보는 꺽정씨에게 큰소리로 말해주고는 나는 그린을 지나쳐 공이 멈춘 곳으로 갔다. 나는 티끌을 입김으로 불어 날리듯이 샌드웨지로 살포시 쳤다. 공이 깃대에 붙었다. 

"야. 민호야 니가 객관적인 수치를 말해줘라."

그제야 내 물음에 감이 잡혔는지 그가 민호를 향해 외쳤다. 

"민호씨도 꺽정씨와 한 패거리니까 무슨 말을 하든 믿을 수 없어요. 나중에 사용자에게 직접 물어보겠어요. 길이와 둘레와 강도와 온도, 그리고 팽창력까지..."

나는 당연히 컨시드를 받았으므로 다음 홀을 향해 도망쳤다. 홀에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안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그는 파를 못한 것 같다. 2미터 남짓한 퍼팅이었으므로 좀 벅찼겠지만 그는 내 앞에서 그 정도의 오르막 퍼팅은 무난하게 해치우고는 했었다.

나는 지난 해 꺽정씨가 2언더 파를 치던 날 함께 라운드를 했었다. 그에게 그런 기록을 안겨준 일등공신은 역시 퍼팅이었다. 

그의 퍼터는 모세의 지팡이처럼 신통술을 부렸었다. 퍼터를 공에 가져다 대기만 하면 공은 저절로 굴러서 홀 안으로 숨었다. 나는 기가 죽어서 그 앞에서 퍼터를 팽개치고 싶었다. 

오늘의 퍼팅 실패는 내가 그의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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