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우리는 속고 있는 겁니다. 돈이 많습니까? 국립대 법인화 되면 애들 대학 학비를 몇천만원씩 내야 합니다. 돈 없으면 대학도 못가는 세상이 됩니다.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지난 6일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열린 ‘자율선택에 따른 국립대학법인화를 위한 공청회’ 이향철 교수의 발언 중 벌어진 공청회장 풍경이다. 지난 9월 29일 국립대 교직원들의 단상 점거로 한 차례 무산된 이후 또 다시 열린 공청회 역시 엉망이었다.
국립대 법인화되면 불균형 초래
이 날 경찰 6개 중대, 여경 20여 명을 동원,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둘러싸 행사장을 찾은 100여명의 전공노 관계자의 출입을 제한했다. 일반인도 공청회장인 본관 4층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3번의 신분증 검사를 해야만 했다. 교육부는 지난 29일의 단상점거로 인해 더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처럼 어수선한 상황은 공청회장 안에서 더욱 심각해졌다. 밖에서는 농성구호를 외치는 전공노 관계자들의 함성소리와 공청회장 안에 자리 잡은 국립대법인화 반대를 원하는 사람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어수선하게 진행되던 공청회장은 전국국공립대 교수연합회 정해봉 교수의 발언 이 후 더욱 심각해졌다. 정교수가 “국립대법인화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이 자리에서 토론회에 참석할 수 없다. 참석해 주신 분들께는 죄송하다”며 “국립대 법인화로 국가재정 지원이 끊기게 되면 고등교육 부실과 학부모 부담 가중은 물론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더 나아가 수익이 나기 힘든 기초 학문은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자리를 일어섰다. 발언 직후 곳곳에서 불만을 토로하던 참석자 100여명도 환호성과 박수를 치며 함께 퇴장했고, 결국 자리에 남아있는 참석자수도 반 정도인 100여명에 불과한 반쪽짜리 공청회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국립대 법인화, 논란은 언제부터
국립대 법인화는 지난 1995년부터 논란이 돼왔었다. 하지만 국립대학 교수들과 교육관계자들의 반대로 지난 10년 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최근 다시 논의가 된 것은 일본 도쿄대가 법인화 이후 민간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최우량 신용등급인 ‘AAA'등급을 받는 등 경쟁력을 제고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부터였다. 또, 올해 5월 교육부 김진표 부총리가 ’대학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립대의 자율성과 책무를 확대하기 위해 스스로 자율경영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대학들은 법인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 할 것”이라고 국립대 법인화 계획을 밝힌 것 또한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것이다.
“몇 남지 않은 국립대학까지 민영화 되는 것”
공청회장에 입장하지 못한 전국국공립대교수연합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국립대법인화 저지와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 100여명은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투쟁위원회는 “국공립대 법인화는 국립대의 재정을 줄여 등록금 인상을 가져오게 되는 동시에 정부의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교육부는 법인화 계획을 폐기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만일 국립대 법인화가 추진된다면 인사·예산권을 대학에 주되 재정지원을 줄이고 공무원 신분도 회수해 국립대를 사립대 법인과 같아지는 것이다. 결국 설립자만 국가일 뿐 나머지는 사립대 체제와 똑같아지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반대자들의 논리가 성립된다. 법인화 이후 국립대는 재정확보를 위해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올려야 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교수 1인당 학생수를 늘리는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또,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인기과목에 치중하게 될 것이고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되는 것 또한, 반발이유 중 하나다.
한편, 국교련 김송희 회장은 “세계 공교육의 발전사를 비춰봤을 때, 선진국의 공교육 지원 비용은 계속 증가해 왔다”며 “국가의 지원을 줄이고 몇 안 되는 국립대마저 법인화 된다면 후진국적인 행태를 자행하는 것”이라며 반대의견을 내세웠다. 이어 그는 “이대로 국립대 법인화가 추진된다면 대학은 수익성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고등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첨예한 대립관계구도를 형성하게 한 국립대 법인화. 대학구조개혁단의 한 관계자는 “국립대의 법인화는 대학특성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하며 “국립대 법인화에 따른 지나친 교직원 감축 등의 사태에 대해 지나친 우려일 뿐이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반대자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근 교육부는 교원평가제 강행으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지만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한 교육부는 첩첩산중을 실감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던 교원평가제, 국립대 법인화 뿐 아니라 지방교육자치법 개정, 교원임용 축소 등의 정책 또한 반대여론이 거세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누구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교육정책.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은 거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반대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책을 강행한다면 국민들의 반발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