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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부활을 고대한다

  • 등록 2006.04.13 1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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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화면에서 조흥은행 간판이 뜯겨지는 장면이 나타났다 곧 사라졌다. 신한은행과의 합병은 진작에 결정됐고, 신한은행으로 새살림을 시작한다는 광고를 보았지만 막상 조흥은행이라는 이름 자체가 지워지는 장면을 우연히 보면서 실로 만감이 교차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조흥은행이 누구인가. 109년이 된 한국최초의 은행이고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서 민족경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실력양성운동의 기념물이 아닌가. 유일하게 남은 한말실력양성운동의 역사적 유물을 우리는 무덤덤하게 폐기처분해도 좋은가.
90년대 초반부터 정부의 관치금융폐지와 금융산업의 발전책을 요구해왔던 필자는 장충단 공원이나 조흥은행 앞 집회에 나가 정부당국과 금융산업 노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IMF 이후에는 초국적 금융자본을 위한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런 노력들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채 한국의 금융산업이 고스란히 외국인들의 손아귀에 넘어가 버렸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외국금융자본에 다 넘어간 현재 시점에서 외환은행의 부실판정 기준이 어쨌다느니, 김재록의 로비가 어떻다느니 하는 걸 보면 그런 하수인 몇을 잡아넣고 장본인들에게 면죄를 주려는가! 이 땅의 각계 지도층이 IMF의 신조를 추종하는 집단이 돼 앞장서서 국민들을 오도했으니 그 책임이 어찌 가볍다 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한국의 금융산업 경영자들은 초국적 자본의 공격을 받을만한 잘못을 저질렀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자금을 대주어, 부실을 자초했고, 실력도 없이 디리버티브 상품에 투자해 기백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또 그들은 기득권에 안주해 한국경제의 핏줄인 한국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무감각했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일차적으로 재정금융정책을 집행한 자들이다. 이들은 세계시장의 동향에 어두웠고,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랬기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한국경제를 파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일본과 미국의 금융자본을 찾아가 차입을 부탁하고 국제투기꾼을 초청해 구세주처럼 모셨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런 무책임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한국의 돈줄을 넘겨줬고, 40대 전후의 정체불명의 브로커에게 40년 경제성장의 곳간 열쇠를 맡겼던 것이다.
그러면 조흥은행은 다른 은행에 합병되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부실은행이었나? 부실이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흑자로 전환될 수 있는 은행이었다. 그런데도 합병을 밀어부쳤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은행의 덩치를 키워서 안정성을 확보해야 외국자본의 수익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IMF 초기부터 시중은행을 통폐합해서 2~3개로 만들어 외국자본이 장악할 것이라는 각본이 나돌았는데 8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이 꼭 그 각본 그대로이다.
그렇다고 필자는 조흥은행 관련자들을 무조건 두둔할 생각은 없다. 100년 은행을 자랑하면서도 한국의 금융산업을 대표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지도 못했고, 창립 초의 정신을 지켜 민족경제의 버팀목 노릇도 국민과 서민들에게 특별히 다가간 서비스도 없었다. 국민의 혈세로 투입돼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으면서도 자기 몫을 챙기는데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백년역사에 걸맞는 조직문화와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국민들 중 누구도 조흥은행의 소멸에 가슴아파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체념하든, 무덤덤하게 바라보든, 어쨌든 필자는 조흥은행의 부활을 기다린다. 100년의 영욕 속에 때묻어 쓰러진 조흥은행이 아니라, 일제의 경제침탈이 착착 진행되는 와중에 우리 손으로 민족경제를 살려내야 한다는 선각자들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있는, 그런 조흥은행의 소생을 간절히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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