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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산(蜜山)기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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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개호를 나와 중-소간의 국경이 나뉘어진 몇 미터 길이의 다리 앞에서 이곳을 오갔을 한말 지사들을 생각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관문이 블라디보스톡에서 봉밀산으로 넘어오는 길목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고 땅주인도 없는 허허 빈 들판의 소로길이었을 텐데 지금은 국경초소 외 검문이 엄중했다. 봉밀산 일대를 돌다가 비극의 현장도 보았다.
서일 독립군 사령관이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결한 곳이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이 모두 서일 사령관의 부하였으니, 서일 선생의 지도력과 헌신적인 태도는 얘기할 필요도 없다. 소부대로 나뉘어있던 의병과 독립군부대를 하나의 지휘체계로 통합해 북만주의 항일군사역량을 결집시켜 봉오동, 청산리전투와 일제의 대토벌작전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서일 사령관의 탁월한 지도력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런 서일 사령관이 자결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은 일제의 토벌을 피해서 봉밀산 일대 몇 개 마을에 분산돼 둔병을 하던 독립군들이 일제의 사주를 받은 마적떼의 야밤기습으로 몰살당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부하들을 졸지에 잃은 서일 사령관은 무장독립운동의 희망을 잃고 살아남은 몇 명의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총을 들고 일제와 끝까지 싸우려 했던 무장독립군들의 만주지역의 역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덮혀져 있다. 역사의 이끼를 걷어내고 이제는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해야 한다.
밀산 일대의 묻혀있는 역사유적지들을 밟고 호흡하면서 필자는 말할 수 없이 갑갑해졌다. 결국 밀산 일대의 독립운동 근거지 건설운동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애국지사들은 자금부족과 분열 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것뿐이었을까. 밀산 근거지 건설자금을 대기로 한 이종호의 배신도 크게 영향을 끼쳤고, 공화국을 지향하는 신민회 그룹과 근왕파를 자처한 한말의병그룹의 분열도 맥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다 큰 요인은 국제정세의 급변이었다. 한말의 지사들이 공화파든 근왕파든 봉밀산 일대를 근거지 건설의 신천지로 바라봤던 데에는 1904년 러-일 전쟁 후 2차 러-일간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제정러시아가 일제와 싸운다면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밀산일대는 독립전쟁의 근거지가 될 수 있고, 2차 러일전쟁시에 참전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가정이 일본의 외교공세에 따라 2차러일전쟁은 고사하고, 러일밀약에 따라 무너지고 말았다. 러일밀약의 결과는 곧바로 연해주와 만주 일대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정러시아 헌병대가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거나 추방했고, 일제는 북만주 일대에 공공연한 군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밀산은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요소들이 결여됐던 것일까. 지역의 넓이로 보면, 수십만 수백만 명도 충분히 먹여 살릴 만한 곳이었다. 밀산은 일제의 학정을 피해 조국을 떠난 망국노들이 긴급한 생활안정과 장기적인 독립전쟁의 기초역량을 키워갈 수 있는 곳이었다. 또 청나라는 망하고 장춘에 근거지를 둔 장작림의 군벌세력은 아직 힘이 없었다. 권력의 공백지대였던 셈이다. 이런 요소는 분명히 호조건이었다. 하지만,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근대화된 군사력이 공격한다면 한시도 버틸 수 없는 평야지대였다.
물론 망국 직후 미주의 국민회와 같은 조직에서 망명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뛰어난 지도력이 공화국 건설을 지향하는 대독립당과 공화정부를 밀산을 포함한 북만주 일대에 건설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시정부를 꾸릴 역량도 없는 조건에서 임시정부수립론은 청사진이었을 뿐,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독립국가의 꿈이 익기에는 밀산시대의 씨뿌리기가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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