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김정기 기자] 정부가 유동성 위기로 긴급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의 자산 매각을 지원키로 하면서 대한항공과 두산그룹 등 위기에 놓인 기업들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일 캠코를 중심으로 한 '2조원+α' 규모의 기업자산 매입프로그램을 다음 달부터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적기에 자산 매각이 어려우면 캠코와 민간 공동투자를 우선 추진해 직접 매입·보유한 뒤 제3자에 매각(바이&홀드·buy&hold)하고 공장, 사옥, 선박 등 기업의 영업용자산은 캠코가 매입한 후 재임대하거나, 기업 재매입 수요가 있는 자산은 매입 후 인수권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원대상은 대기업의 경우 재무구조 개선 기업, 채권단 지원 요청 기업 등 자구노력 및 선제적 자금수요가 큰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한다. 대한항공이 대표적이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개별 수요에 맞게 폭넓게 지원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지원 대상 기업에 차별을 두지 않기로 했다. 경영위기의 원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무관하더라도,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은 모두 지원대상에 포함했다. 두산중공업, 쌍용자동차도 이 매각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대한항공의 경우 현재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지정하려는 서울시의 계획과 '헐값 매각'을 막으려는 대한항공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대한항공의 자구안 이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으며, 내년 말까지 2조원 규모 자본 확충을 요구받았다. 이에 대한항공은 1조원 규모 유상증자 외에 송현동 부지, 왕산레저개발 지분 등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0일 마감된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매각 예비입찰에 인수의향서(LOI) 제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개발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에 대한 수의계약을 주장하면서 사실상 공개매각 절차가 무산됐다는 분석이다. 예비입찰 전 15곳 정도가 송현동 부지 관련 투자설명서를 받아갔음에도, 서울시가 문화조성 계획을 발표한 이후 투자방침을 철회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 공원화 계획을 골자로 한 북촌지구단위계획 결정 변경안을 최근 공고했고, 부지 보상비로는 4670억원을 책정했다. 송현동 부지 매각으로 최소 5000억원을 확보하려던 대한항공의 자구안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서울시가 공원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대한항공의 공개매각이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항공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서울시를 상대로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대한항공은 "서울시의 일방적 문화공원 지정 추진, 강제수용 의사 표명 등에 따라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어 지난 11일 국민권익위에 고충민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도 마찬가지다. 두산그룹은 앞서 유상증자, 자산매각, 제반 비용 축소 등을 통해 3조원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의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유동성 확보 계획의 핵심축인 두산솔루스 매각전도 흥행에 실패, 두산의 경영정상화 방안 이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진행된 두산솔루스 예비입찰에 당초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대기업들이 모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 참여가 예상됐던 글로벌 사모펀드(PEF)들도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솔루스에 앞서 지난주 진행된 두산모트롤BG의 예비입찰도 당초 기대보다 참여가 저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부가 캠코를 통해 기업 자산이 적정한 가격에 매각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공언한 만큼,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와 두산의 자산들도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 영향과는 별개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캠코나 민간과의 가격이 맞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기업들도 눈물 흘리고 헐값에 팔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적정한 가격으로 서로 살 수만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져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기업이나 채권단 입장에서는 경영정상화 수단이 늘어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인 것 같다"며 "다만 캠코의 재원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민간 PEF의 참여가 중요한데, 시장에서 소화하지 못한 매물을 두고 정부와 민간과 기업간 적정한 가격이라는 타협점을 찾기가 그리 쉬울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원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지원대상이나 시기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