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한국은행이 16일 기준금리를 8개월째 연 1.50%로 동결한 것은 경기부양보다는 금융안정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연초 국제유가 폭락,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기둔화,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부작용 등 세계 곳곳에서 한번에 터진 악재들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간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어서다. 때문에 세계경제 상황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점검하는 한편 국내 경기의 회복세를 더 살펴나가는 쪽으로 판단이 기운 것으로 보인다.
◆‘이변 없는’ 2월 기준금리 동결
이번 금리동결은 시장의 예상과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국내 채권시장 전문가 100명 중 99%가 금리동결을 전망하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한은이 당장 금리를 움직일 것이라는 시각은 적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한 모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기둔화 등으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고조되면서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아시아 증시는 급등락을 반복하며 요동치고 있다.
국제유가는 중국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수요량 감소 등으로 배럴당 20달러대로 떨어지며 폭락했고, 곡물·비철금속 등 기타 원자재 가격도 세계 수요 둔화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각국의 대대적인 돈 풀기 정책에도 세계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외환시장과 채권시장도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의도와는 다르게 움직이면서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BOJ)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0.1%로 내렸는데도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는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일본 국채와 엔화에 수요가 몰리면서 엔화 가치는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움직이기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 금융시장에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커진 가운데 금리를 내리게 되면 외국인 자금 이탈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순매도가 지속되며 불안감이 고조된 상황이다.
더욱이 12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와 기업부채 부실 우려는 금리인하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금리를 내리면 급증하는 부채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금통위, 달라진 분위기…금리인하 ‘소수의견’
한은이 8개월째 연 1.50%로 동결했지만 이번 금통위에서는 금리인하에 대한 소수의견이 나와 어느 때와는 달라진 분위기를 보였다. 이날 금통위에서 하성근 금통위원이 0.25%p의 금리인하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간 만장일치로 이뤄진 금리동결이 8개월 만에 깨진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한은이 상반기중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번 금통위에서 소수의견이 나온 것을 두고서도 추가 금리인하의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요국 통화정책의 완화적인 기조와 국내 부진한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추가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1월 한국 수출은 지난해 같은달보다 18.5% 감소하며 확대된 감소폭을 보였다.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이 선박수출 감소와 유가 급락 등의 영향으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등의 경기둔화 우려로 수출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수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6%에 그치며 고꾸라졌고,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직격탄을 받았던 지난해 7월(100) 이후 최저치인 100을 기록하며 '소비절벽' 우려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윤여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이 가중됐고, 국내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3월 정도에는 금리인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용구 이베스트투자 연구원도 "상반기 중 한차례 인하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며 "한은의 물가와 경기판단, 금융안정에 대한 스탠스 변화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이번 금통위는 완고한 기조에서는 한발 물러선 모습"이라며 "미 연준의 금리인상 기조가 점차 완화되고, 유럽 중앙은행과 일본 중앙은행 등이 추가적인 통화완화에 나서면서 한은도 3월 한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아직까지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향후 금리조정 여부는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의 확대 여부와 국내 경기 회복세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이 총재는 이날 "추가 금리인하 여력이 있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금리를 조정했을 때에는 기대효과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워낙 높아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금리조정은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