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새누리당 내 대표적 정책통으로 꼽힌다. 특히 조세·재정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권 초기부터 박근혜 정부 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최경환 부총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 하고, 온화한 개인적 캐릭터로 볼 때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적극 밀어붙이기 보다는 전임자가 벌려 놓은 사업들을 다독여 관리하는, 야구로 치면 마무리 계투요원 역할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미 금리인상과 중국의 경기 둔화, 12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 등 한국경제가 당면한 위기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유 내정자는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클리블랜드주립대 초빙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조세연구원장, 한국경제학회 이사, 한국재정학회 부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등을 거친 뒤 2008년 정계에 입문했다. 학계에 있는 동안 동안 그가 주로 연구했던 분야는 주로 조세와 재정 분야였다.
학자로서 재정 분야에 대해 내놨던 의견들은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고,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과 재정건전성 훼손을 경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유 내정자는 지난 2002년 KDI에서 발표한 '재정건전성 제약하의 SOC 투자'라는 논문에서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 확보가 절대적 제약으로 작용하므로 장기국공채 발행은 SOC 투자재원 확대방안으로 채택하기 어렵다"며 "민간자본의 SOC 투자를 적극 유인하기 위한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썼다.
1995년 KDI에서 발표한 '미국의 정부개혁 : 정부의 재창조' 논문에서는 "미국의 경험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지만 기능의 재편, 조직의 축소, 공무원규모 감축, 정부서비스 기준 도입, 성과측정이 가능한 예산제도 도입 등의 제도개혁은 우리 나라에서도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유 내정자는 '사학연금의 개혁을 위한 정책과제(2008년, 한국재정학회)', '독일과 우리나라의 통일비용 및 통일재원 비교 연구(1999년, 한국 재정·공공 경제학회)', '공적연금의 적정급여구조에 관한 연구(1991년, KDI)', '탈세의 경제적 효과와 유형 및 방지에 관한 연구(1992년, KDI)' 등 조세·재정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했다.
대부분의 연구 과제들은 ▲지하경제 양성화 ▲민자투자 활성화 ▲재정·연금 개혁 등 박근혜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와도 연관성이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유 후보자가 취임 이후 자신의 조세·재정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정·연금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최근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책으로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유 후보자의 경제정책에서 자신의 소신을 펴기에는 활동 반경이 넓지 않다는 관측이 좀 더 우세하다. 내년도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은 이미 지난주 최 부총리의 주도로 완성된 상태다. 또 정권의 핵심 실세인 최 부총리와 유 후보자는 정치적인 위상에서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 이전과 같은 강력한 정책 추진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전임자인 최경환 부총리가 경기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모험가'적 기질을 발휘했다면 유 후보자는 '관리자'형 리더십을 통해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하던 중점 과제들의 성과를 구체화하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 후보자 내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일관된 정책 기조'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최경환 부총리(경제팀)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정 전문가로서의 소신과는 달리 지금까지 정부의 확장적 거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유 후보자는 "2008년 이후 (양적완화에 대한) 전세계적인 컨센서스가 이뤄졌고, 우리도 따라갔고 그 당시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지금까지 최 부총리가 혼자 하겠다고 한 게 아니다. 적어도 열흘 전까지는 전세계적인 정책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보통 재정학자가 재정 적자에 굉장히 보수적이지만 2008년 위기때는 흔히 말하는 '케인지언'으로 돌아섰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는 경제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적자 규모를 어떻게 가져갈지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새 경제팀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로 4대 부문(노동·공공·교육·금융) 구조개혁의 성과를 구체화하고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일을 꼽는다.
유 후보자도 내정 이후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등 구조개혁을 위한 법안들은 국회에 계류된 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유 후보자는 취임 후 야당을 설득하고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는 일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정치인 출신인 유 후보자를 경제부총리에 기용한 것도 그의 전문성보다는 정무적 판단 능력 등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유 후보자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오던 노동개혁, 기업구조조정, 경기 부양 등 큰 과제들을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특히 국회에 법안이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법을 통과시켜 서비스 산업쪽이 탄력을 받도록 힘을 쏟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