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수출 부진과 내수 위축으로 장기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할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메르스까지 덮치면서 '더블 딥' (경기가 회복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것)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성장률 추이를 보면 결코 기우가 아니다. 지난 2013년 2.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가 작년에서 가까스로 3.4%의 성장을 이뤘지만, 올해 다시 성장률이 2%대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이런 탓에 국내 국책·민간연구소들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는 추세다. 메르스 같은 돌발성 악재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 있어 이런 추세라면 3%대 성장도 버겁다는 설명이다.
한국 경제가 더블 딥 상황으로까지 가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난데없는 메르스, 경제성장률 0.1% 갉아먹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17일 메르스 사태 이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작년 10월 전망 3.7%보다 0.9%포인트 낮췄다. 민간연구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2%대로 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달 초 '7월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하는 한국은행도 지난 4월 성장 전망치를 0.3%포인트 내린 3.1%로 낮춘 데 이어 또 한 차례 성장률 조정에 나설지 관심이 모아진다. LG경제연구원도 지난 4월 경제성장률을 당초 3.4%에서 3.0%로 떨어뜨린 데 이어 경제성장률을 추가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구소들이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이유는 사실상 메르스라는 돌발변수 탓이다.
금융연구원은 메르스 사태 확산이 국내소비지출 감소로 이어지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0.1% 끌어내리는 족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3년 홍콩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발병 시 초기 한달간 홍콩의 소비지출은 전년 같은 달보다 약 8% 감소했다.
전염병이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치면서 외식, 여행 등을 꺼리는 분위기가 생기고 외국인 관광객수도 줄어들면서 소비지출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 역시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일 경우 가계의 패션, 의류 등 비내구재와 외식, 관광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소비가 감소함에 따라 연간 성장률이 0.04%, 외국인 관광 위축 등으로 0.06%씩 각각 성장률을 저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내 민간 소비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서비스 분야의 경우 다음 달·분기로 소비를 늦추는 '소비 이연'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작년 기준 서비스 분야의 민간 국내소비지출은 400조3414억원으로 전체 704조288억원의 56.9%를 차지하고 있다. 주류, 담배, 오락, 음식 등 외식·유흥분야와 메르스 사태로 취소·축소된 단체여행, 지자체 문화행사 등의 피해는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하계휴가가 포함된 3분기 이후로 영향이 확산될 수밖에 없어 더 큰 문제다.
금융연구원은 이번 전망에서 메르스가 한 달 내 단기간에 종식될 것으로 가정하고,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으나 메르스 사태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경기 하방 위험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임진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홍콩 사스 사례에서 보면 지역 감염으로 확산될 경우 사태가 2개월 정도 더 지속되고, 소비 증가율은 초기 한 달 대비 2배 가깝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만약 메르스도 지역으로 번질 경우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경기순환 진폭 줄었다…"저점 탈출 방안 강구해야"
메르스 종식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이 과거와 달리 경기 회복세가 미약하다는 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순환 구조로 나타나는 데, 한국의 경제상황은 지난 2013년 2월 저점을 통과했지만 뚜렷한 경제 회복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른바 '더블딥' 공포다.금융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최근 저성장의 추세성 여부 판단과 잠재성장률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기변동 진폭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금융연구원이 국내총생산(GDP)의 순환구조를 분석한 결과 경기 하강기와 상승기간 표준편차는 지난 2000년 이전까지 2.68%에서 ▲2000~2014년 1.20% ▲2010~2014년 0.53%로 크게 낮아졌다.
추세구조로 봐도 GDP 성장률은 1969년 1분기 2.8%에서 작년 4분기 0.8%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는 최근 한국 경제의 저성장 장기화가 경기 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메르스라는 돌발 변수가 성장 잠재력마저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 실장은 "2011년 이후 저성장이 장기화되면서 장기실업에 따른 인적자본 훼손, 설비투자의 부진, 금융중개기능 약화 등, 이른바 저성장 이력효과(hysteresis)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정책당국의 경기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경제가 처한 저성장 구조가 장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 한국은행 등이 추가경정예산,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정책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단 경제성장률 하방 국면에서 성장 경로로 복귀하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금융연구원은 정부가 하반기 7~8조원 규모의 추경을 실시한다고 가정할 경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0~0.2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해 1차례 더 추가 인하하면 0.05~0.10%포인트 추가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더블딥 우려를 제기하며 '3%대 성장'을 위해 20조원 이상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작년과 같은 재정절벽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세입 추경으로 10조원을 편성하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세출 추경도 추가로 12조원가량 필요할 것으로 봤다.
홍준표 연구위원은 "금리가 낮고 유동성이 풍부할수록 추경효과가 커진다"면서 추경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구축효과'는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