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결국 질문은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딸 샘(엠마 스톤)이 아버지 톰슨(마이클 키턴)에게 소리친다. "당신은 도대체 누군데?(Who the fuck are you?)" 영화 '버드맨'은 60살이 되도록 이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는 한 사내의 몸부림이다. 당신은 그런 그를 마치 '중2병'에 걸린 소년 같다고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누구인가? 아마 이 실존적 질문 앞에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에게 당황하는 인간, 나 자신 앞에서 방황하는 인간이 사실은 바로 나이고, 너이며, 우리다.
퇴물 배우인 리건 톰슨은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난 '배우'라고. 그것도 '버드맨'에 출연했던 배우라고. 영화 한 편으로 수천억원을 벌어들였던 배우라고. 지금은 재기를 위해 레이먼드 카버의 연극을 만들고 있는 배우라고. 사람들은 리건 톰슨을 보고 외친다. "버드맨!" 그렇다면 지금의 리건 톰슨은 어디에 있는가. 톰슨의 연극은 톰슨 자신이 되기 위한 작업이 아닌 '버드맨'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톰슨은 결국 한때 잘나갔던 나를 다시 연기하기 위해 또 다른 연기를 하는 톰슨이다. 도대체 톰슨은 어디에 있을까. 톰슨은 샘에게 말한다. "이건 내게 중요한 일이야!" 샘이 반격한다. "누구한테 중요한 일인데?"
90년대 슈퍼히어로 블럭버스터 영화 '버드맨'에 출연해 부와 명성을 모두 누렸던 배우 리건 톰슨은 이제 한물간 스타다. 그는 현재 재기를 위해 브로드웨이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연극을 준비 중이다. 공연 프리뷰를 목전에 두고 남자 배우 한 명이 부상을 당하고, 그 자리에 마이크 샤이어(에드워드 노턴)가 들어오면서 연극 준비는 엉망이 된다. 톰슨은 오프닝 무대에 잘 설 수 있을까.
형식은 곧 메시지다.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은 '나'를 규정하지 못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영화적 형식으로서 명확한 미학적 비전을 제시한다. '영화가 마치 원테이크로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톰슨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연극처럼 찍은 것이다' '리건 톰슨 내면의 휘몰아치는 격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등으로 단순하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물론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배우라는 것, 연극을 한다는 것, 그 연극이 다시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게 중요하다. 이냐리투 감독은 가짜 인생을 사는 배우를 통해 결국 허구(가짜)인 연극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다시 영화라는 만들어진 이야기(가짜)로 재구성되고, '마치' 원테이크로 보이는 듯(가짜) 촬영해 그것을 관객이 보게 한다. '버드맨'은 결론적으로 '가짜-가짜-가짜-가짜'로 이어지는 영화다.
술 마시는 장면을 공연하면서 실제로 술을 마시는 마이크가 못마땅한 톰슨은 그의 술을 바꿔치기한다. 그러자 마이크가 말한다. "진짜가 없어!" 이냐리투 감독은 당신이 보고 있는 것 중 어떤 게 진짜냐고 묻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다시 당신은 진짜가 맞느냐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인정욕구와 자기멸시를 오가며, 타인의 규정과 '낙인'에 의지해 살고, 자꾸만 자기 안으로 틈입해오는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리건 톰슨의 가짜 인생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공통된 이야기다. "이 연극이 내가 살아온 기형적인 삶의 축소판 같다"는 톰슨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냐리투 감독이 창조한 형식의 탁월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영화를 연극적으로 연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부분을 판타지로 도약시킨다. 톰슨이 초능력을 사용하고, '버드맨'이 등장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만의 판타지 안에 사는 존재가 아닌가.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인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혹은 인정했다가 다시 부인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인간이 숨어들어 갈 곳은 판타지 외에는 없다.
이냐리투 감독은 '버드맨'을 통해 최상급의 대사 작법 능력을 보여준다. 이 또한 형식적인 측면과 일부 관련이 있다. '버드맨'의 대사는 연극 속 대사와 영화 속 현실의 대사로 나뉜다. 그는 단순히 관객이 듣기에 '나이스한' 대사를 만들지 않는다. 영화의 형식과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대사를 쓴다.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대사를 은근히 활용하는 방식도 좋다.
가령, 톰슨이 공연에서 "왜 나는 항상 사랑을 구걸해야 하지. 난 네 맘에 들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되기를 항상 꿈꿨어"라는 대사는 톰슨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톰슨의 전 부인이 톰슨을 향해 "샘에게 좋은 아빠가 될 필요는 없었어. 그냥 아빠가 되기를 바랐을 뿐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톰슨이 어떤 인간인지를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 대사 한 마디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이냐리투 감독의 야망은 마이크가 톰슨과 공연 연습을 하면서 톰슨을 향해 "왜 대사를 낭비하냐"는 물음에도 담겨있다.
'버드맨'은 리건 톰슨의 갈등이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산 인간의 특수한 상황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톰슨의 주변 인물들은 톰슨을 때로는 비난하고 다그치며, 위로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결국 톰슨이 겪는 내면의 고통을 똑같이 견뎌내야 하는 '우리'일 뿐이다. 톰슨이 가짜라고 비난하던 마이크는 레슬리에게 "넌 무대 밖에서는 사기꾼이야"라는 말을 듣는다. 톰슨을 그토록 몰아붙이던 샘은 마이크에게 "네 눈을 뽑아 네 뇌를 보라"는 말을 듣는다. 레슬리는 자기 자신을 "남의 인정만을 바라는 어린아이"라고 평한다. 비평가 타비타는 톰슨으로부터 "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낙인만 찍고 있잖아"라는 말을 듣는다.
결국 우리는 모두 톰슨의 분장실 거울에 붙어 있는 문구인 '모든 것은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 빛난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이냐리투 감독이 필모그래피 최고의 영화를 만들었듯이 마이클 키턴 또한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키턴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만리장성을 쌓았다가 무너뜨리는 내면의 혼란을 겪는 인간인 톰슨을 맡아 전에 보여준 적 없는 강렬한 몰입으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로 화려하게 날아올랐던 그는 '버드맨'을 통해 연기 인생 제2막을 화려하게 열어젖혔다. 에드워드 노턴,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흠 잡을 데 없다.
리건 톰슨이 연극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맡은 역할 '멜'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리건 톰슨은 프리뷰 공연 때는 가짜 총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초연에서는 진짜 총을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 그는 가짜 톰슨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있을까. '만들어진 나'를 죽임으로써 '본연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휴버트 그레이퍼스와 션 켈리는 그들의 책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것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빛나는 모든 것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