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으면 감사해 하다가도 어려움을 만나면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도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에 빠져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일 때, 하나님께서 아주 멀리 떨어져 계신 것 같고 마치 자신을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은 ‘여기에 있는 나를 아실까?’ 생각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면서도 ‘내 기도를 듣고 계실까?’ 의심하기도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지요.
다윗은 인생의 온갖 역경을 체험했지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 139:8~10).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는 분이십니다. 사람 편에서는 세상이 넓고 멀게만 느껴져도 하나님 편에서는 그러한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해 전 세계 곳곳에 역사하십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이를 잘 느낄 수 있게 하는 백부장에 대해 나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로마 군대는 휘하에 거느리는 군인 수에 따라서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등으로 직위가 구분됐습니다.
한 백부장이 이스라엘 가버나움이라는 지역에 파견되어 일하는 중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사랑과 선과 긍휼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접한 것입니다. 마음이 선한 백부장은 이 외에도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사와 표적도 나타낸다는 소문을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 나아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하며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백부장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뜻밖의 말을 합니다.
백부장은 그 믿음이 참됐기 때문에 이처럼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며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고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에 ‘하라’ 하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는 것은 하지 않으며, ‘지키라’ 하는 것은 지키고, ‘버리라’ 하는 것을 버리면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삶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나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이사야 57장 19절)
글: 이재록 목사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