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성폭력을 소재로 삼은 건 한 소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소녀가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소녀를 둘러싼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화 '한공주'는 열일곱 살 '한공주'(천우희)가 남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전학을 오면서 시작한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더는 노래할 수 없고, 친구가 있지만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웃을 수 없을 것 같던 일상을 살다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새 친구와 노래로 희망을 찾아간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피의자들의 학부형들로 인해 공주는 또다시 길을 잃게 된다. 피해자인 공주는 어느 순간 주위의 왜곡된 시선으로 피의자가 돼 간다.
이수진(37) 감독은 2010년 영화 제작을 준비,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기존에 벌어졌던 성폭행 사건, 중·고등학생들의 자살, 왕따와 같은 사건들이 쉽게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처받은 여자, 가해자 남자로 나누지 않고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자 했다. 여자에 대한 감정은 아내에게 모니터를 받으며 작업했다. 시나리오가 나온 후에는 배우들에게 감정, 감성, 습관을 많이 물어봤다. 고등학교 때 느꼈던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삽입하고자 했다."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준비가 돼야 그 안에서 즉흥적인 것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배우들과 매주 미팅을 했다. 시나리오 이야기도 하고 직접 촬영을 하며 리허설을 했다."
'한공주'를 연기한 천우희에 대해서는 "우연히 다른 영화의 오디션 자료를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의 톱10에 있던 배우 중 한 명이 천우희였다. 가장 인상적이었고 오디션을 보자고 해서 만나게 됐다. 오디션 후 엘리베이터로 배웅하는 순간까지 공주의 느낌을 주려는 모습들이 기억에 남았다. 또 차분히 오버하지 않고 연기를 잘했다. 천우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천우희가 한공주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하기에 조금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회차로 가장 힘든 장면을 찍었다. 그 날은 그 장면 한 컷만 찍었다. 간접적으로나마 배우가 느낌을 알고서 촬영을 시작하길 바랐다. 이 영화를 함께 찍고 있던 스태프들도 우리가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해 몸소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천우희(27)는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내가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가 깔끔하고 감정들이 묻혀 있다. 한편으로는 촬영이 끝날 때 내가 정말 공주가 돼 있을까 봐 캐스팅이 안 되길 바라기도 했다. 맺고 끊는 걸 확실히 하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감정 연기도 어려웠다.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와 닿았다. 이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인지 헤아릴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봤을 때 살기 위해 애쓴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 하는 촬영이 많아 외로움이 있었다. 나마저 처지면 분위기가 우울해질 것 같아 내용은 어둡지만,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했다"는 마음이다.
영화에 자극적인 장면은 없다. 하지만 '성폭행'이라는 주제로 인해 청소년 관람불가다. "15세 관람가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청소년관람불가를 받으니 아쉬움이 있다. 고등학생들도 같이 보고 학부모들도 같이 영화를 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고 바랐다.
4월1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