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04.29 (화)

  • 맑음동두천 16.0℃
  • 맑음강릉 15.8℃
  • 맑음서울 16.7℃
  • 맑음대전 18.4℃
  • 맑음대구 21.8℃
  • 맑음울산 14.1℃
  • 맑음광주 19.0℃
  • 맑음부산 13.8℃
  • 맑음고창 15.2℃
  • 맑음제주 16.2℃
  • 맑음강화 11.7℃
  • 맑음보은 18.3℃
  • 맑음금산 17.8℃
  • 맑음강진군 17.6℃
  • 맑음경주시 16.1℃
  • 맑음거제 13.8℃
기상청 제공

문화

크래피티아트 선구자 ‘크래시’, 섬광 번뜩이는 신작 선보여

URL복사

인사동 관훈갤러리, 크래시 개인전, 11월 15일까지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의 친구, 스트리트 아트의 선구자
팝 아트 영감받은 에너지 넘친 작품 선보여

 

시대가 바뀌면서 예술의 가치도 바뀐다. 길거리 담벼락에 휘갈기던 낙서화는 이제 시대의 총아가 되었다. 거리의 예술,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로 불리는 그래피티(Graffiti)는 세계적 미술품 경매에서 최고가를 찍는 주요 장르가 됐다. 201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바스키아의 ‘검은 피카소’가 668억원에 팔렸다.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는 미켈란젤로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1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림값도 천정부지다.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가 11월 15일까지 마련한 ‘크래시 개인전’은 미셀 바스키아(1960-1988), 키스 해링(1958-1990)과 의기투합했던 거리예술의 ‘살아있는 전설’ 존 마토스 크래시(61)의 최신작을 내걸었다.  바스키아, 키스 해링은 이미 고인이 됐지만, 그들과 함께 거리예술의 새 지평을 열었던 그래피티의 선구자 '크래시'가 어떤 신작을 내놓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이다.

 

 

크래시가 바스키아, 해링과 함께 겁없이 뉴욕 지하철역을 스프레이 낙서를 하며 누볐던 때는 1970년대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수많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사건들로 가득한 역동적인 시대였다. 특히 크래시가 태어나고 자란 뉴욕의 사우스 브롱스 지역은 중산층과 노동자계급의 주거지역으로 그 혼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13세의 나이에 또래들과 함께 시대와 사회의 반항아가 되어 뉴욕 지하철과 지하철역에 낙서를 휘갈기로 도망을 치는 것이 당시 '그래피티' 선구자들의 생활이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뉴욕 브롱스 태생 크래시는 13세때 처음으로 스프레이 페인팅을 하기 시작했다.  뉴욕 지하철역에 낙서를 휘갈기고 줄행랑을 치곤했던 그도 당시에는 그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크래시는 친구들과 어울려 기차, 순환하는 지하철 등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고, 그래피티 태깅(tagging:스프레이나 마커로 자신의 사인을 하는 행위)을 하곤 했다. ‘CRASH’란 이름은 그가 실수로 학교에서 컴퓨터를 떨어뜨린 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크래시’라는 이름의 그래피티는 뉴욕시 곳곳에서 등장하게 된다.

 

 

크래피티는 70년대 중반 태깅 이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해 70년대 말에는 일러스트레이션, 풍경, 만화캐릭터 등 새롭고 다양한 작품 스타일로 발전했다. 그래피티가 뉴욕의 워싱턴 하이츠와 브롱스를 주축으로 퍼지게 되면서 예술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크래시의 크래피티도 진화했다. 그 역시 이미 뉴욕 도시 전역에 걸쳐 그만의 대담하고 거친 시그니쳐 그래피티를 선보인다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키스 해링 등 당대의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했다.

 

 

1980년대 초반, 크래시의 커리어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찾아온다. 1980년 사우스 브롱스에 위치한 대안예술공간인 ‘Fashion MODA’ 박물관이 기념비적인 전시가 된 <Graffiti Art Success for America>전을 기획하게 되는데, 당시 19세의 크래시가 본 전시에 참여한 것이다. 본 전시는 그래피티 작가들에게 갤러리의 외벽에 직접 그림을 그리도록 허락된 최초의 전시 중 하나였다.

 

이를 계기로 크래시는 스트리트 아티스트와 순수미술 세계를 연결짓는 그래피티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선구자로 우뚝서게 된다. 

 

크래시의 작품은 벽화와 실크 스크린 프린트화의 형식에 앤디 워홀(Andy Warhol)과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같은 팝 아트 등에서 영감을 받아 에너지 넘치고 다채로운 색감에 대중문화 등을 차용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스프레이 페인트를 붓처럼 뿌려 현란한 색채감을 얹어낸 ‘Melancholy Drama’(2022), ‘Behind the Remote’(2022) 등은 번뜩이는 눈이 뿜어내는 듯 번쩍이는 섬광을 표현해 눈길을 끈다.  평단으로부터 “거리의 삶과 안정된 사회 간에 시각적인 연결고리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은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 보카 레이튼 미술관, 뉴올리언스 미술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박물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그는 Absolut Vodka, Fender Guitars, SoBella Handbags, Levi’s,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Tumi 캐리어 및 Morphik, Supreme과 기업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김형재 시의원, “서울시 홍보대사의 ‘무제한 연임’ 관행 사라진다”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서울특별시의회 김형재 의원(국민의힘·강남2)이 서울시 홍보대사의 무분별한 연임 관행을 방지하기 위해 대표발의한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지난 25일 개최된 제330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최종 가결됐다. 그동안 서울시는 시정의 효율적인 홍보와 시 이미지 제고를 위한 차원에서 홍보대사를 무보수 명예직으로 위촉하여 운영해 왔다. 최근 5년간 위촉된 홍보대사만 해도 52명에 달한다. 현행 조례상 홍보대사의 임기는 2년이다. 그러나 연임 횟수에 대한 제한은 따로 없기 때문에 특정인이 장기간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에 따라 서울시 홍보대사직이 관행적으로 연임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번 개정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가결됨에 따라 앞으로 서울시 홍보대사는 초임 2년을 포함해 최대 6년까지만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단 현 임기 중 시정홍보에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는 경우에 한해 추가 연임을 허용하는 예외 규정을 추가했다. 김형재 의원은 “그동안 서울시는 시정홍보와 시 이미지 제고를 위해 홍보대사를 위촉·운영해 왔지만, 최근 5개년간 위촉된 52명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