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없는 부부의 관계회복
공무원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시인 연우는 외계인이다. 지구인 아내와 소통이 단절된 채 오랜 권태기로 고통스러워하던 연우는 우연히 자신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여인 세아를 만나게 된다. 한 편 지구인 아내 혜린은 남편에게 자신이 비밀정부요원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생활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첫 암살 지령이 내려진다. 암살 상대는 연우와 묘한 관계에 빠진 세아. 혜린의 상사이자 불륜상대인 한 실장은 갈등하는 혜린을 재촉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연우와 혜린은 권태기를 맞기 시작한 30대 중반의 부부다. 이들에겐 아이도, 소통도, 심지어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미소조차 없다. 각자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기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같이 있는 것조차 낯설고 어색할 만큼의 거리가 생겨버렸다. 대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애인까지 생겨버린 상황에서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떠한 액션을 취할 것인지가 가장 궁금한 대목이 될 것이다. 영화 ‘지구에서 사는 법’은 소통이 없는 권태기 부부의 사랑과 관계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다.
비일상적인 것이 일상 속에 드러났을 때
‘지구에서 사는 법’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대안가족을 이루게 되는 해프닝을 유쾌하게 풀어낸 ‘다섯이 너무 많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주인공에게 남아 있던 가족마저 해체되는 현실을 담담히 보여준 ‘나의 노래는’에 이어 안슬기 감독의 세 번째 가족의 관계에 대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부부라는 가족관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소재는 불륜이다. 불륜을 그린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결혼이라는 제도하에 금기된 사랑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일탈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서 지금까지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꾸준히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현실에 발을 디딘 리얼리티를 드라마라는 장르 안에서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구에서 사는 법’은 불륜이라는 말랑한 내피에 SF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외피를 덧입혀 기존 불륜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하며 이 영화만의 유니크함을 획득하고 있다. 외계인 남편과 지구인 아내의 불륜이라는 독특한 설정은 그 동안 보아왔던 불륜영화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지구 밖으로 마구 뻗어나가는 영화적 상상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같은 장치는 일상에 스며든 판타지, 즉 비일상적인 것이 일상 속에서 드러났을 때의 낯섦과 특별함, 그리고 그것들을 한 꺼풀씩 걷어냈을 때 드러나는 또 다른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새로운 형식적 시도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에 있으며 늘 방학을 이용해 영화를 찍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안슬기 감독은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인간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라는 변함없는 장기를 보여주면서도 ‘지구에서 사는 법’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예감케 한다.
‘다섯은 너무 많아’와 ‘나의 노래는’을 통해 인간사이의 관계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편 모두 보편적이고 평범한 인생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 속에 감독 특유의 위트가 담겨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신작 ‘지구에서 사는 법’에서 안슬기 감독은 조금 색다른 외도를 선택한다. 불륜이라는 소재에 SF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뻔한 이야기들을 낯설게 그리고 통속적으로 꾸며 놓는다. 소통과 관계라는 전작의 주제를 이으면서도 그 주제를 독특한 형식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영화 ‘지구에서 사는 법’은 새롭게 변신을 시도한 작품이다.
일상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이나 일상의 판타지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잘 보여주는 미셸 공드리의 작품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새로운 형식미로 변신을 시도하며 안슬기 월드는 점차 확장하고 있다. 바로 안슬기 감독의 신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미래를 걷는 소녀
감독 : 코나카 카즈야 배우 : 카호, 사노 카즈마

하바나 블루스
감독 : 베니토 잠브라노 배우 : 알베르토 요엘, 로베르토 산마르틴, 일렌 시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