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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38) - 용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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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충남 홍성의 용봉산이다. 대구에 사는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가 12월이 되었으니 남당리가 있는 홍성의 용봉산 등산을 하고 남당리로 새조개를 먹으러 가잔다. 주말은 교통과 등산에 사람이 많이 붐비어 복잡하니 평일로 하잔다.

 

30여 년의 직장생활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로움도 잠시, 은퇴 후의 많은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다시 장애인 활동 지원사로서의 일로 박제된 일상을 다시 지내고 있는 나는 평일 등산의 제안에 일정을 조정하여 하루의 휴가를 얻었다.


잠실에 사는 친구도 같이 가기로 하여, 내가 사는 고양시에서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실로 강북 강변도로를 달린다. 이른 새벽이라 한가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그 새벽에 움직이는 차들이 상당히 많아 놀랐다.

 

 

세계 역사상 최단 시일 내 빈민국에서 선진국으로 부상한 우리나라의 저력이 이런 부지런함에 있지 않을까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강변의 야경 속을 달리며 생각하다, 평일 하루의 휴가에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느끼며, 일상에 있으면 일상을 벗어나고 싶고, 일상을 벗어나면 다시 일상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모순된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할까 고민할 때 한 느낌을 준 원철 스님의 산문집 한 구절이 떠오른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듯 누구든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 타성에 빠지기 마련이다. 알고 보면 공간이동 그 자체가 자기 구원이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주변 환경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는 여유로움을 통해 도리어 자기를 부각시키는 역설의 아름다움으로 살라.” 


여행을 떠나는 공간이동과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로움,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진정 아름다운 거라는 쓸데없는 자만감도 든다.


잠실에서 차를 갈아타고 홍성으로 출발하는 고속도로도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바쁜 세상에 여행을 떠나는 여유로움과 코로나 상황으로 자주 못 만난 그동안의 안부와 사건 이야기들로 2시간여의 시간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난다. 아침에 문을 연 식당에 들어가 순두부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용봉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구에서 온 친구를 만난 시간은 9시. 친구로부터 등산로의 간단한 안내를 듣고 오르기 시작한다.

 


용봉산(龍鳳山)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듯한 형상으로 인해 유래했다 하며 산 전체를 덮고 있는 기암괴석이 금강산과 닮았다 하여 충청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단다. 오르는 초입부터 급경사로 바윗길이 계속 이어지며 오를수록 내포신도시의 공사현장이 그 높이에 따라 전경을 달리한다.

 

오르는 산줄기는 계곡 건너편의 기암괴석의 바윗돌들이 마치 북한산의 비경을 보는듯하고 눈을 돌리면 내포 벌이 시야를 시원하게 한다. 힘겹게 오른 중턱에는 최영 장군의 활터라는 안내판과 함께 정자가 서 있다. 역사를 알고 여행하는 사람은 인생을 두 배로 산다는데 이곳에서도 최영 장군의 신화가 흐르고 있었다.


조금을 더 올라 최고봉인 용봉산(381m) 정상 석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악귀 봉 쪽으로 방향을 튼다. 노적봉을 지나 악귀 봉으로 가는 길은 오르내림이 있는, 산행의 즐거움이 있는 능선 좌우의 전망과 바위틈의 소나무와 같은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봉보다 더 운치 있는 악귀 봉 경치는 발아래 충남도청과 내포신도시를 한눈에 조망하는 것이다. 보령 쪽의 오서산과 예산 쪽의 수덕사 덕숭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산은 높지 않아도 아기자기한 기암괴석의 조화로 산행의 지루함은 전혀 없다. 다시 능선을 지나 용바위와 병풍바위를 거쳐 용봉사로 내려온다. 

 


용봉사는 백제 말에 창건된 절로 조선 말기 평양 조씨 가문에서 옛 용봉사 터에 묘를 조성하기 위해 용봉사를 폐사시켰다 하는데 주민과 신도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여 유지되고 있다 한다. 그 당시 권력이 얼마나 힘이 있으면 절을 없애고 묘지를 조성할까 생각하니 구한말의 시대 상황도 제대로 못 읽던 한심한 권력의 실상을 보는 듯 씁쓸하다. 


절 위에는 마애석불이 있다 하여 조금을 다시 올라 마애여래상을 친견한다. 내려다보듯 약간 기울어진 바위에 새겨진 인자한 미소의 마애여래상은 서산 마애 삼존불의 미소와 많이 닮았다 한다. 부디 서로가 정의요 선이라 주장하는 오늘의 세상에 여래의 밝은 미소가 그 모두를 화엄의 세계로 이끌었으면 좋겠다.


겨울이지만 겨울답지 않은 따스한 날씨와 먼 지역 친구들의 이야기와 정담으로 예상보다 늦게 절에서 하산하여 다시 돌아온 휴양림 주차장에서 드디어 늦은 점심을 위해 남당리로 출발한다. 남당리로 가는 길에는 홍성의 옛 이름인 홍주라는 글자가 자주 눈에 띈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 서부에 있는 홍주 지역을 관하던 목사가 있었고. 충청도에서도 양반 세가 강하여, 국가의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는 기질이 강했던 고을이었단다. 항일운동 당시 충청도 지역에서 최대 규모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한국 독립운동의 거장 중 한 명인 김좌진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성이 있던 고을이기도 하단다. 


잠실 사는 친구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신 후 해방이 되자, 친일하던 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이불 속에서 나도 만세운동을 했다고 나서는 바람에 화병으로 해방 이듬해 돌아가셨다던데 독립운동의 역사만은 바로 세워졌으면 좋겠다. 가다 보니 만해 한용운의 생가 가는 길도 있다. 


드디어 도착한 남당리. 포구 옆의 횟집 창가에 앉아 12월부터 제철이라는 새조개와 주꾸미를 시키고 바다를 본다. 지금은 썰물이어서인지 배가 뻘 위로 올라서 있다. 새조개는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실려있는 조개로 작합(雀蛤 : 새조개)이라 소개하고 있단다.

 

특히나 여수의 가막만, 보성의 여자만 일대 새조개는 예로부터 그 품질을 인정받아 왔으나 품질이 다소 떨어지고 소출도 작던 남당리 새조개는 놀랍게도 서산방조제 사업 이후, 남당항에 대규모의 새조개 군락이 찾아왔단다. 불과 20여 년 전부터 소문나기 시작한 남당리 새조개의 맛은 담박하나 씹을수록 감칠맛이 느껴지고 달다. 새조개 샤브샤브는 새조개를 먹고 패즙(貝汁)이 우러난 국물에 칼국수를 넣어 먹는 마무리가 최고다.

 


용봉산을 품고 있는 홍성의 먹거리 남당항의 새조개를 음미하면서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서울로 출발한다. 오르는 고속도로변 서쪽 하늘은 낙조로 붉게 물들고, 처음 가 본 홍성의 기억이 오늘 하루가 역설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듯 뿌듯하여 홍성의 자랑 만해 한용운님의 내가 좋아하는 한 시 한 수 되새겨 본다.

 

昨冬雪如花 今春花如雪(작동설여화 금춘화여설)
雪花共非眞 如何心欲裂(설화공비진 여하심욕렬)


작년 겨울 내린 눈은 꽃과도 같았는데 / 금 년 봄에 피는 꽃은 흰 눈과 같구나.
눈과 꽃 모두가 진짜가 아니거늘 / 어찌하여 내 마음 이리 찢어지는가.

 

먼 길 운전해준 우정어린 두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올 한해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 맞으시기를!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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