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시원한 곳으로 피서를 가고 싶지만 아직 코로나팬데믹 영향권이라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주말이나 휴가 기간에 좋은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광부화가 황재형의 <회천(回天)>展과 단색조 거장 정상화 화백의 대규모 개인전인 <정상화>展을 비교해 가며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단색조 거장 정상화의 <정상화>展은 9월 26일까지, 광부화가 황재형의 <회천(回天)> 展은 8월 22일까지 이어진다.
두 전시는 많은 점에서 대비된다.
<정상화>展이 대표적인 단색조 추상화를 볼 수 있는 전시인데 반해, <회천(回天)>展은 탄광촌의 광부와 주변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한국적 리얼리즘 미술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정상화 화백의 60년 화업 단색조 조망

“상하좌우로 색과 밀도의 변화를 통해 심오한 우주와 자연의 규칙과 질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정상화>전은 한국 단색화 추상을 대표하는 구순의 정상화 화백의 화업을 총망라하는 전시다. 전시의 대표작은 역시 단색화다. 단색화는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수도 있는 회화이다. 정화백의 단색화도 마찬가지. 한때 그의 단색화를 비판한 사람들은 ‘벽지’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블루칩에 속한다. 경매 최고가는 11억원대(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달한다.
박서보 이우환 하종현 정창섭 등과 같이 단색화 대표 작가로 꼽히는 그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만들기 위해 단신으로 일본과 프랑스를 드다들며 부단히 노력해왔다. 지금은 여주에서 26년째 홀로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대 미대 졸업 후 ‘남이 안 하는 것’을 찾아 헤맸던 그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위해 한국전위미술단체에서 활동하다 1967년부터 1년, 그리고 1977년부터 13년 프랑스 파리에서 머물렀다. 그 사이 1969년부터 8년간은 일본 고베해서 체류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1992년 영구귀국했고, 1996년 이래로 경기도 여주에서 구도자처럼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은 격자 구조 추상화. 그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캔버스에 고령토를 3~5mm 바르고 수직·수평선 또는 대각선을 따라 접어 화면에 균열을 낸 후 고령토를 뜯어낸 후 그 곳을 물감으로 메우고 덜어내는 행위를 반복해 완성한다.

작품의 완성을 위해 수행하듯이 물감층을 '덜어내고 메우는' 행위를 반복하는 정상화 화백은 "그림은 학문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화면에 살아있는 느낌을 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려 했다”고 한다.
정 화백은 이 단색화에 대해 "단색으로 보이지만 단색이 아니다. 단색 속에도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색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흰색이라도 다같은 흰색이 아니라 흰색 속에 여러 색이 혼합되어 있으며, 보이는 것이 아닌 “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는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작업했던 여러 공간(서울, 고베, 파리, 여주)에 따라 연대기적 흐름으로 작품과 자료 100여점을 펼쳤다.

먼저 1953~1968년 서울에서 펼친 작품들은 젊은 시절 추상실험을 보여준다. 열정적으로 물감을 던지고 뭉개며 캔버스를 찢는 앵포르멜(제2차 세계대전 후 격정적인 추상화 운동) 경향 작품들이 눈에 띈다.
1967년 파리로 갔지만 경찰과 학생들이 폭력적으로 대치하는 시위가 자주 일어나 밖에 못 나가고 작업만 하다가 1년여만에 아내의 갑작스러운 병으로 귀국했다. 이미 계약한 고베 화랑의 독촉으로 1969~1977년 일본에 머물며 단색조 추상화로 변모했다. 화면에 기하학적 도형이 줄어들고 1973년 전후로 백색 격자형 구조 추상화가 나타난다.
격자 기법은 1967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했을 때 네모난 작은 돌로 넓은 대로를 메우고 있던 노동자의 모습에 영감을 받았다. 유년시절 치마에 일정한 주름을 잡고 도마 위에 무를 똑같이 썰어내던 어머니 모습도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캔버스를 말고 접어 격자 무늬를 만들었다.

1977~1992년 가족을 남겨둔 채 떠난 파리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쳐 격자형 단색조 추상화를 완성했다. 1992년 11월 귀국한 그는 "혼자 만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작품을 하고 싶다"면서 4년후 여주 산속 화실로 들어간다.
그는 대형 화면에 모눈종이처럼 작거나 절편처럼 크거나 문창살 같은 격자무늬를 다양하게 만들어냈다. 초창기 격자 무늬 작품은 ‘벽지’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우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펼쳤다.
수행하듯이 물감층을 '덜어내고 메우는' 행위를 반복해온 정 화백은 “상하좌우로 색과 밀도의 변화를 통해 심오한 우주와 자연의 규칙과 질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림은 학문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작가는 “화면에 살아있는 느낌을 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한국 리얼리즘 대표 화가 황재형의 작품세계
"탄광 막장은 인생의 끝과 절망이 아니라 또 다른 인생이 있는 곳이다. 과거 탄광촌은 검은 탄가루의 어두운 이미지가 가득했지만, 그 색깔이 진솔한 사람의 때깔이었다."

'광부 화가' 황재형(70)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전시 <황재형:회천(回天)>에는 탄광촌의 일상과 삶을 리얼리즘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을 중심으로 우리네 삶속의 아픔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 65점이 나와있다.
광부시절의 기억을 되살린 ‘도시락’(1981)을 알루미늄과 스펀지 등으로 만든 조형물을 비롯해 탄광에서 만난 광부들과 주변인들을 그린 초상화들, 넘어진 소를 그리고 ‘우리는 늘 소가 넘어갑니다(속아넘어갑니다)’라는 제목을 단 그림, 세월호 어머니를 그린 ‘새벽에 홀로 깨어Ⅱ’, 지금은 폐역이 된 ‘나한정역’을 소재로 한 ‘나한정에 부는 바람’, 남편을 막장에서 잃고도 선탄부가 되어야 했던 권씨를 그린 ‘선탄부 권씨’ 등을 보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중 일부 작품들은 머리카락을 붙여 그린 그림인 것을 알 수 있다. 리얼리티를 살리다 살리다 무너지는 가슴을 더 이상 표현할 길이 없어 인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붙여 표현한 그림인 것을 눈치채게 된다. 그 머리카락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헝클어져 뭉쳐있기도 하다.
평소 “예술가는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그는,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마치 빈센트 반 고흐가 탄광촌으로 들어갔듯이 1980년대 초반 강릉 정동진과 정선의 끝자락에 있는 구절리 광산에 들어간다.
그리고 광차도 없이 질통을 지고 탄을 캐는 가장 힘든 광산에 입사했다. 가장 원시적인 철광과 중석광 흑연광산에서 일했다. 근시인 탓에 광산생활이 불가했지만, 그는 렌즈를 끼고 버텼다. 3개월이 지나 렌즈 교체 시기가 오면 시력이 나쁘다는 사실이 알려져 광산을 그만두는 삶을 반복하면서 3년을 버텼다.

작가는 “그런 곳에서 순수한 광부의 모습을 보게 됐고 산업전사의 진면모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소설가 황석영은 황재형 화백의 작품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림에 인생을, 인생에 그림을 바치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 묵묵히 바위처럼 견디어내며 확인해낸 그가 자랑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황재형은 3년간 태백, 삼척, 정선 등지에서 광부로 일하며 1980년대 민중미술의 현실 참여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쇠락한 폐광촌과 강원도의 풍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인식의 전환을 꾀하였고, 2010년 이후에는 머리카락과 흑연 등을 활용하여 탄광촌의 인물에서 동시대 이슈를 넘어 인간성, 시간성, 역사성 등의 주제로 확장해왔다.

전시명 ‘회천(回天)’은 ‘천자(天子)나 제왕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다’ 또는 ‘형세나 국면을 바꾸어 쇠퇴한 세력을 회복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 예술의 사회적 효용성 또는 변혁의 가능성을 그림으로 증명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황재형은 “막장(갱도의 막다른 곳)이란, 인간이 절망하는 곳이다. 막장은 태백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라는 언급으로 탄광촌에서의 삶을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하였다. 그는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그것의 회복을 꿈꾸는 메시지를 이번 전시의 제목 ‘회천(回天)’으로 전달한다.
전시는 ‘광부와 화가'(1980년대~), ‘태백에서 동해로'(1990년대~), ‘실재의 얼굴'(2010년대~) 등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광부와 화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그려낸 탄광촌의 노동자와 주변인의 인물 초상이 중심을 이룬다. 2부 ‘태백에서 동해로’는 황재형이 1980년대 중반 광부를 그만두고, 1989년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폐광이 늘어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관조자로서 삶의 터전을 바라보는 1990년대 이후 시기를 담고 있다. 탄광촌뿐 아니라 강원도의 대자연을 그린 풍경화로 구성되어 있다.


3부 ‘실재의 얼굴’은 인물과 풍경을 함께 선보인다. 각 구성별로 시작 시기만 명시한 것은 초기 작업을 시간이 지나 새로운 매체로 다시 풀어내고, 한 작업을 수 년에 걸쳐 개작하는 작가 특유의 방법론을 고려한 것이다.
2010년대 황재형이 지역을 벗어나 초역사적 풍경과 보편적인 인물상을 그리고, 1980년대에 천착했던 주제를 머리카락을 이용해 새롭게 풀어내는 시기를 담고 있다. 화면에는 탄광촌의 광부와 주변 풍경이 재등장하는 한편 세월호나 국정농단 사건과 같은 동시대 이슈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광부화가 황재형이 그려낸 사실적 인물과 광활한 대자연, 초역사적 풍경은 오늘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며, “<황재형: 회천回天>은 지난 40년 동안 사실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현실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고 한국 리얼리즘의 진면목과 함께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