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토쿠 태자 고구려를 그리다
일본은 20세기 초 유럽의 르네상스와 같이 고대 문화를 부흥시키고자 고대로 설정한 아스카시대(飛鳥時代; 538-710)와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의 문화를 일본 근대 미술에서 부활시켰다. 한국인은 일본 근대미술에서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를 소재로 한 작품을 감상할 때 한국의 고대 문화를 회고하게 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요시무라 다다오(1898~1952)는 ‘쇼토쿠 태자’(1936)다. 쇼토쿠 태자(573-621)와 그의 부인인 다치바나 오이라쓰메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 한국과 관련된 요소들을 도출할 수 있다. 다치바나 오이라쓰메는 쇼토쿠태자의 명복을 빌며 주문 제작한 천수국만다라수장에 고구려의 제작자가 참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 속에서 다치바나 오이라쓰메는 무궁화를 들고 있으며, 그 의상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티브가 사용되어 있다. 쇼토쿠 태자의 앞에는 그의 스승인 고구려의 승려 혜자의 이름이 새겨진 까치꼬리모양의 향로를 그려 넣는 등, 고대사에서 한국과의 관련성을 해석해 낼 수 있다.
조각 작품으로 고토 세이이치(1893~1984)의 ‘훈염薰染’의 감상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훈염은 한국인에게 성덕대왕신종의 공양자상의 비천을 연상시킨다. 공양자가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손잡이가 달린 향로를 들고, 향처럼 수직으로 날리는 천의는 한국과 일본, 고대와 근대의 시공을 뛰어넘어 동질성을 느끼게 한다.
금속 공예로서 시미즈 난잔(1873-1948)의 ‘새의 모습을 한 천녀 문양 발’의 역동적인 문양은 호류지 금당벽화의 비천과 같이 아스카시대의 고전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김명국과 후가이 에이쿤의 ‘달마도’
불교미술은 국경을 초월한 도상이 지속적으로 유포됐다. 일본 선화의 선구자인 후가이 에쿤(1568~1654)의 달마도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조선통신사의 화원으로 일본에 파견된 김명국(1600-?)의 ‘달마도’를 단번에 연상시킨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친근한 ‘선재동자도’, ‘열반도’, ‘사수도’와 같은 불교의 전통적인 주제들이 근대에 다시 부활한 작품을 전시했다.

가노 단유는 조선에서 전래된 안견화풍과 남송회화에서 유래한 강남산수화풍의 ‘소상팔경도’ 모두 모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이 두 가지 계통을 모사한 후에, 소쇄하고 간략한 남송 화풍의 ‘소상팔경도’를 독립된 작품으로 제작해, 일본의 정서에 부응한 특징을 보인다.
한국의 호랑이가 일본 도자기에
일본 문인화가는 한국 문인화가와 같이 한시漢詩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매우 인기가 있었다. 대표적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난정곡수도’, ‘매화서옥도’, ‘도화원도’를 전시한다. 한국과 일본은 처음에는 한시와 그에 상응하는 중국 회화의 도상을 수용했다가 점차 자국의 실경에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한 메타포로서 응용했다.
일본의 나카바야시 지케이(1816~1867)의 ‘매화서옥도’는 평화롭게 펼쳐진 강가에 핀 평화로운 풍경이라는 에도시대의 서민계층인 초닌의 정서를 대변한다. 이것은 조선시대 조희룡의 ‘매화서옥도’가 차가운 겨울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고고함을 추구한 유교 문화와 구별된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지만, 일본 미술에서는 호랑이의 모티브가 유행했다. 호랑이는 아스카시대의 고분벽화에 사신도로 수용됐다. 벽사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서쪽을 상징했다. 무로마치시대(1329~1573) 이후 호랑이는 수묵화풍의 ‘용호도’에서 사무라이의 용기를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호랑이를 볼 수 없었던 일본인은 고양이와 같이 귀엽고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호랑이는 그림뿐만 아니라, 17세기에 가키에몬양식과 구타니양식의 채색 도자기를 소재로서 인기 있는 모티프가 됐다. 이 호랑이 문양의 도자기는 유럽의 수출용 도자기에도 주요한 모티프로 사용돼 유럽까지 아시아의 호랑이 도상이 전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