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화순 기자] 아, 겁에 질린 양심이여, 왜이렇게 나를 고문하는가. 등불이 파리하게 타고 있다. 지금은 자정인데 공포로 인해 떨리는 온몸은 식은 땀방울로 흠뻑 젖어 있구나. 무엇이 무섭단 말이냐? 나 자신? 곁에 아무도 없는데. 리처드는 리처드를 사랑해. 그래, 나는 나야. 여기 살인자라도 있나? 아니, 내가 바로 살인자야. <리처드 3세> 5막 중
간교함과 악랄함으로 무장한 '리차드 3세'
만지는 작품마다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는 유럽 연극계의 거장 토마스 오스터마이어(50)가 2년만에 국내 팬들을 찾아온다. 세계 연극계에서 가장 핫한 '리처드 3세'(셰익스피어 원작)를 들고.
6월 14~17일 LG아트센터.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극을 즐기는 국내 팬들도 상당 수 있다. 2005년 '인형의 집-노라'(LG아트센터)에서 노라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파격적인 결말은 국내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 2010년 '햄릿'(남산예술센터)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비디오카메라로 인간의 이중성과 햄릿의 불안을 극대화해 보여주면서 한층 국내 인지도가 높아졌고, 2016년에는 '다수는 항상 옳은가?'란 문제 의식을 제기했던 '민중의 적'(LG아트센터)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의 작품은 늘 실험적이고 파격적이다. 동시에 원작의 주제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올리기로 잘 알려져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석자 앞엔 '천재 연출가'란 수식어가 20대부터 따라 다녔다.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베를린 도이체스 테아터 소극장 바라케 예술감독으로 전격 발탁되어 소외된 젊은이들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주인공. '베르톨트 브레히트' '남자는 남자' '파랑새' 'Shopping & Fucking' 등 문제작을 발표했고, 세계 연극인들이 실험연극의 중심지로 꼽는 '샤우뷔네 베를린'의 예술감독을 31세에 꿰찼다.
라르스 아이딩어 주역 맡아, 거칠게 살아숨쉬는 '리처드3세' 연기
광기의 주역 리차드 3세 역은 연극배우 겸 영화배우 라르스 아이딩어가 맡는다. 오랜 시간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와 호흡을 맞춰온 그는 2010년 '햄릿'의 주역으로 국내 무대를 찾은 바 있다. 이번에는 광기와 검은 야욕, 사악한 매력의 리차드 3세로 분한다. 곱사등에 절름발이로 복잡 미묘한 심리상태를 가졌던 리처드 3세로 변신할 참. 이미 해외 평단으로부터 '신들린듯한 연기로 드라마틱한 리처드3세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리처드 3세'는 2015년 2월 베를린 초연 후 아비뇽 페스티벌(2015년 여름), 에든버러 페스티벌(2016년)에서 극찬을 받았다.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는 내한 전 이번 작품 연출 이유에 대해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작품을 통해 인간들이 스스로 그 내면을 맞닥뜨릴 수 밖에 없게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비도덕적인 작품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또 사이코패스와 같은 '리처드 3세'에 대해 "오히려 허무주의자에 가깝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