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건칠불(乾漆佛)로 원 상태 그대로 남아 있어 고색창연하다. 남아 있는 건칠불은 모두 도금을 새로 하여 옛 느낌이 전혀 없었다. 도금은 원래 것이나 세월이 흘러 많은 부분이 벗겨져 옻칠이 드러나 있는 부분이 많다. 대좌는 별도로 만들었으나 규모가 컸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얼굴은 작은 편이고 보관은 높으며 얼굴은 앞으로 꽤 숙였다. 머리를 과도하게 숙인 것은,불상을 불단 위 높은 곳에 봉안되므로 머리를 숙여야 경배하는 신자들과 서로 눈이 만나 바라볼 수 있기 때문 이다.
얼굴의 이마 중앙에는 보석이 원래대로 박혀있어 소중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보석을 빼 내어 원래 보석이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목은 가늘고 짧으나 삼도(三道)가 있다. 이마와 보관 사이에 머리카락으로 여기는 검은 색의 조형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모두 동그란 보주가 일 렬로 가지런히 늘어서 있으며 양 옆으로 갈수록 타원형을 이루는데 그것 들도 모두 보주들임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에서 한 줄기 영기문(靈氣文; 우주의 기운을 조형화한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 필자의 발견)이 생겨나와 내려오다가 두 갈래로 갈라져 어깨 위로 내려와 구비치며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데 머리카락이 아니고 영기문임을 알 수 있다. 보살이라 하더라도 긴 머리카락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머리칼로 여겼던 모든 것이 하나하나 보주임을 알 수 있으며, 여래의 나발이 모두 보주임을 주장해온 필자의 주장이 보살의 머리칼에도 적용됨을 알 수 있고,이 보살의 보주들로 모든 문제가 정확히 해결되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니는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보관(寶冠)은 역시 건칠기법으로 만들었는데 만져보면 금속처럼 단단하다. 앞 중앙에는 무량보주(無量寶珠)에서 양쪽으로 영기문이 뻗어나가는데 일반적으로 꽃무늬로 알고 있지만, 매우 중요한 영기문으로 관음보살의 영적(靈的) 기운을 이 조형 하나에 응집시키고 있다. 세 개의 띠가 세 단을 이루어 그 사이 사이에 영기문을 표현했는데 중간의 영기문이 보관의 핵심이다. 그것을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중앙의 꽃은 연꽃이 아니고 꽃 중심에 있는 보주가 핵심이다. 보주는 측면이요,꽃모양 전체는 마치 위에서 본 모양이다. 즉 보주에서 사방으로 제1영기싹이 발산하며 양쪽으로는 제2영기싹을 이루어 갈래에서 각각 다시 줄기가 나와 꽃모양이 핀다. 그 꽃 모양은 중심의 꽃모양과 같으나 측면을 본 모양이다. 보주꽃(필자가 이름 지음)에서 생명력을 발산하는 광경이며 또한 무량한 보주를 발산하는 모양이므로, 이 보관의 영기문은 보살의 머리에서 발산하는 생명력과 무량한 보주라고 말 할 수 있다. 그 주변에는 부정형의 형태의 영기문이 가득 차 있다. 그 위래 단에도 부정형의 형태들이 무질서하게 두드러지게 표현했는데 역시 추상적 영기문이어서 놀랍다. 위에서 보면 보관 안에 간단한 돌기 모양의 상투가 보인다. 보살 머리에서 돌출한 보주다.
가슴에는 흉식(胸飾), 가슴장식이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장식이 아니고 중심의 무량보주로부터 보주가 무량하게 생겨나는 모양으로 보살이 몸으로부터 보주가 생겨나는 것을 상징한다. 중심의 오각형 모양의 보주에서 다섯 개의 보주가 생기고, 이를 중심으로 옆과 아래로 보주들이 무량하게 줄줄이 생겨난다. 맨 밑의 술은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술처럼 표현한 것이다.
법의(法衣)를 살펴보자. 착의법(着衣法) 형식은 보살이지만 여래의 것과 같다. 통천(通薦)으로 양 어깨에 걸쳐 아래로 내려와 복부에서 교차하는데, 두터운 법의가 보일 듯 말 듯 교차하는 형식으로 보살상이나 여래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조선후기에 많다. 그런데 이런 법의(法衣) 형식은 보살도 똑같아서 혼란을 가져오지만 보살상에서는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은 여래와 보살은 원래 차이가 없는 것이며 다만 방편으로 차이를 둘 뿐이다. 이 보살상의 경우 법의가 엄청나게 두터워서 상 전체에서 강한 양감(量感)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목의 옷깃은 특히 매우 두렵고,양 손목에 걸치는 법의 깃도 똑같은 정도로 두터워서 불상 전체의 인상에 큰 영향을 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두텁게 제쳐 져서 인상적이며 이 불상을 만든 조각승은 뛰어난 감각을 지닌 것 같다.
손은 따로 만들어 구명에 끼어 넣었는데 손이 작아 보인다. 설법인(說法印)을 취한 손은 목조(木造)인데 손가락은 파손되어 후에 이어서 복원해 놓았으나 법의(法衣)의 엄청난 양감에 눌린 느낌이다. 옷 주름은 눈에 띠게 두드러지게 높고 전체적으로 박력과 양감을 주고 있다. 혼히 치마를 입어 잔주름이 많은 보살상과는 달리,마치 여래상의 법의와 같다. 옆모습은 넓어서 역시 양감이 강하며, 등은 둥글게 부풀어서 불상이 지니는 내적 기운이 가득차게 표현한 것은 괄 목할 만 하다.
비교적 작은 얼굴과 좁은 어깨에도 양 무릎은 폭이 넓어서 상 전체가 안정감이 있고,법의에 양감이 넘쳐 그런 비례가 느껴지지 않는다. 보관은 비교적 높아 불상의 인상이 고준한 감이 있다건칠불상이란 것은 처음에 골조를 만들고 삼베나 종이를 계속 덧붙여 나가는 제작방법인데 종이와 옻을 섞어서 얇은 떡판같이 만들어서 붙여 나가므로 매우 견고하다. 이 건칠불은 단순화(單純化)와 강한 양감(量感)로 인하여 마치 석불(石佛)을 보는 느낌이 든다. 보관 형태도 경상남도 월성군 기림사 건 칠불상의 복잡한 보관을 단순화시킨 것이다. 속이 빈 내부를 보면 붉은색으로 면자(免字)를 찍은 종이로 발랐다. 불상 바닥은 최근에 만들어서 붙인 것이어서 내부 전체를 볼 수 없지만, 팔목이 들어가는 구명을 통해서 내부롤 엿볼 수는 있으나 전체를 볼 수 없어 아쉽다. 원래는 복장물이 있 었을 것이다.
이 건칠 보살상은 관옴보살상으로 추정한다. 이렇게 큰 보살상은 원통전(圓通殿)이나 관음전(觀音殿)에 봉안했을 것으로 보이므로 관음보살상으로 추정한다. 발견 사찰은 알 수 없으나 새로 도금은 하지 않아 고색창연하여 원래 상태를 지닌 귀중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건칠불은 종이나 삼베로 만들므로 무게가 가벼운데, 이 불상은 70kg 이상의 무게로 매우 무겁다. 종이를 일반적으로 십 회 내외로 바르는데 이 불상의 경우에는 이십 회 정도로 여러 겹으로 두텁게 만들어서 무게가 금속 상처럼 무겁다. 이 렇게 원형을 지닌 불상으로 압도적으로 중량감의 인상을 표현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