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쓴 윤종빈 감독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로 시작, ‘시간’ ‘숨’ ‘구미호 가족’ 드라마 ‘히트’와 한미 합작 영화 ‘두 번째 사랑’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연기에 도전해온 배우 하정우가 이번에도 연쇄살인마라는 강렬한 캐릭터를 선택했다. 그가 맡은 연쇄살인마 영민은 출장안마사 여성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연쇄살인을 벌인 희대의 살인마다. 선한 눈빛과 순진한 웃음, 부드러운 외모와는 반대되는 싸늘하고 잔혹한 내면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정형화되지 않은 캐릭터를 만들어낼 전망이다.
- 캐릭터 설명 해 달라.
연쇄살인마 지영민을 맡았다. 연쇄살인마이기에 왜 살인을 저지르느냐 등에 굉장히 많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가정환경이나, 안마시술소에 일하는 여자를 살해하는 데 있어서는 여자에 대한 막연한 감정도 있을 수 있고. 캐릭터를 만드는데 있어 많은 부분을 고민하고 연구했는데, 아직까지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 ‘추격자’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나리오 읽고 나서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좋은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는 내가 맡은 캐릭터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악역이어서 선택했다.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캐릭터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뚜렷하게 만든 롤모델이 없다는 데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감독님과 작업을 해 나가면서 이러한 부분들이 많이 열려있고 발전가능성이 많은, 기존에 볼 수 없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의견을 듣고 스스로도 확신이 들었고, 멋진 선배님과 서영희 씨와 함께 작업한다는데 주저 없이 결정했다.

이제껏 해온 인물들이 소위 세다거나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너무나 솔직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달콤하고 로맨틱한 역할을 좋아한다. 대학 때 했던 연극 공연 대부분이 코미디였고 재미있는 역할을 많이 한 기억이 있다. 작품에서 역할을 맡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 거 같다. 하늘에서 정해주는 듯한 느낌이다.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됐던 거 같고, 시나리오에서 캐릭터를 볼 때 단순히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따져본다. 영화도 시나리오를 보고 제목, 특히 ‘추격자’의 경우도 원래 제목은 ‘밤의 열기 속으로’였는데 그 제목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첫 장을 넘겼는데 내용이 훌륭했고, 감독님을 만났을 때 그런 것들이 기대감과 확신에 차서 작업을 함께하게 됐다.
- 연쇄살인 캐릭터가 여럿 있지만 롤모델이 없고 그래서 더 어려웠다고 했는데, 그렇기에 지영민이라는 인물을 자신만의 캐릭터로 다시 창조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감독에게 한국연쇄살인범에 관련된 책을 4권정도 선물 받아 다 읽었고, 연쇄살인 영화를 다 봤다. 뭔가 자료들을 보면 혼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이전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공통점을 찾고, 찾아갈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싶어 미국드라마까지 전부 찾아봤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따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들을 다 보고 나서 정말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절대 지영민이라는 캐릭터를 악역이라 생각하며 연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나 프리프러덕션 기간동안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내 안의 유아적인 부분, 의식의 흐름대로 영민을 연기해보자는 조금은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대사도 외우지 않고 현장에 나갔었다. 물론 그전에 감독님과 선배님에게 그런 양해를 구하고 현장에서 더 편해지려 노력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놓아뒀던 거 같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고 지영민이 유아적인 부분, 아동적인 부분이 있고, 순수하다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연기 방법에 있어 표현 방법들을 감독님과 이야기를 통해 하나하나 정해나갔던 거 같다. 물론 기독교인이라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겁이 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단지 사람을 죽이고 범죄행위를 하고를 떠나서, 물론 조금 위험스러운 이야기지만 그간의 행위들을 놀이 수단으로, 초반의 미진에 대한 행위나 행동들을 유아적으로 꾸밈없이 하려고 노력했다.
- 살인마를 옹호하는 영화가 아니냐, 살인마를 피해자로 그린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을 듯 하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해석이고, 연기하는 입장에서 나는 그 캐릭터에 이입이 돼야 한다. 나름대로 인물의 히스토리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아까 답한 부분은 내 나름의 해석이었다. 개인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영민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놈이고, 한마디로 나쁜 놈이다.
- 연기자로써 이 역을 통해 어떤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 했는지, 이 역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이 사람의 인생을 응축해서 뭐라고 답할 수 있는가.
많이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몸짓 손짓 하나도 꾸밈없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뒀을 때 분명히 지영민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과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외모적인 부분이나 카메라에 어떻게 비치겠다는 부분들을 배제하고 현 상황에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지영민 역을 일종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이전 연쇄살인범의 가정환경을 봤을 때 불쌍하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사회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때문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5개월 가까이 촬영장에 가면 늘 비가 뿌려져 있고 비가 오거나 늘 밤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약간 수면장애가 있는데 보통 촬영이 저녁 6시에 시작하면 아침 6, 7시에 끝났다. 그리고 일주일에 1~2회는 감독님, 선배님, 영희 씨하고 술을 한잔 하고 헤어지면 점심시간에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을 자고 밤에 일어나서 촬영장을 갔는데 그 생활을 5개월여 하면서 밤낮이 바뀌니까 생각이 없어지더라. 지금 이 자리도 몽롱하면서 꿈같다. 아무 사고 없이 이 자리까지 오게 돼 너무 감사하고 그러한 에너지와 힘이 영화 개봉 후에 좋은 기운으로 나타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