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김남규 기자]"빨리 범인이 잡히길 바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누가 그랬는지…"
제주 서귀포시 임야에서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된 20대 중국여성의 언니가 지난 11일 제주를 찾아 눈물을 글썽이며 한 말이다. 12일은 시신이 발견된 지 29일째다. 오는 13일이면 한 달이 된다.
범인의 신원은 물론이고 정확한 범행 장소와 범행 동기 등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문 중 무엇하나 딱 부러지게 설명되는 건 아직 없다. 피해자 A(23)씨는 지난해 10월7일 무사증(무비자)으로 제주에 들어와 불법체류하며 단란주점 종업원으로 일했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A씨는 같은 불법체류자 신세인 중국인들과 어울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수사가 난항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A씨는 꼬박꼬박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 돈을 보냈다.
피해자의 언니 B(27)씨가 A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지난해 12월15일. B씨는 동생이 마지막 통화해서 우울하고 기분이 안 좋아보였다고 회상했다. 임금 문제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고 전했다.
보름 뒤인 지난해 말 동생은 연락이 끊겼고 4개월 후인 4월13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비보를 접한 A씨의 어머니는 몸져누웠고 다른 가족들은 경비가 없어 제주에 오지 못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시신은 목과 가슴 등 여섯 차례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고 주변에 혈흔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다른 곳에서 살해돼 옮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신 부검에서 성범죄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심하게 부패한 시신의 신원 파악에 애를 먹다가 수배전단을 뿌려 시민 제보를 받아 신원을 확인했다.
경찰은 4월18일 A씨가 일하는 단란주점 단골손님을 체포,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증거부족으로 4월20일 풀려났다.
그러던 경찰은 4월말께 새로운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가 담긴 사진을 찾아냈다. A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난해 12월30일 다음날 오전 6~7시께 제주시 모 은행에서 흰 모자를 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정체불명의 인물이 A씨의 직불카드로 현금 200만원을 뽑았다. 이 장면은 현금인출기 카메라에 찍혔고 현재까지 알려진 용의자의 유일한 모습이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물 29명을 출국 정지 또는 금지하는 한편 용의자가 중국인이고 이미 출국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 올해 1월~4월까지 출국한 불법체류자 384명과 사진을 대조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어 보인다.
경찰은 피해자와 주변인물이 별정통신사를 통해 사용한 대포폰 통신 기록과 피해자의 금융 거래 내역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어제는 피해자의 언니와 이모, 이모부 등 중국 유족이 경찰 등의 도움으로 경비를 지원받아 제주에 올 수 있다.
유족들은 경찰을 만나 "한국 경찰의 노력에 감사하고 범인을 꼭 잡아달라"고 당부했다. 유족들은 이날 시신이 안치된 서귀포의료원을 찾아 시신 수습 문제를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