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는 2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하지만 허니문으로 불리는 이 골든타임에 뭘 했는지 꼽기가 쉽지 않다는 말들이 나올 정도로 평가는 냉랭하다. 위기를 돌파할 뚜렷한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고, 식어가는 성장엔진을 다시 돌릴 구체적인 정책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13일 취임식을 치른 유 부총리의 취임 일성은 '구조개혁'이었다. 그는 "우리 경제를 정상 성장궤도로 되돌리고 강건한 체질로 거듭나게 하는 길은 구조개혁밖에 없다"며 "4대 구조개혁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색무취'라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한 듯 '백병전', '징비', '분투' 등의 강한 단어를 사용하며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3기 경제팀의 정책의 초점은 경제의 체질 개선에 있었다. 지난해까지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으로 기초체력을 회복한 만큼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작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취임 이후 대내외 환경은 3기 경제팀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중국의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로 연초부터 글로벌 교역량이 급감하고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는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불안한 경제 상황은 지표로 나타났다. 수출은 지난해 1월부터 15개월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과 제조업 부진의 여파로 1분기 산업생산은 0%대 증가율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연말 내수를 견인했던 소비와 투자도 올해 들어서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청년 실업률은 매달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러자 구조개혁의 추진 동력도 점차 약해졌다. 노동개혁의 핵심인 노동 4법은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도 총선 일정에 가로막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총선 결과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이 만들어지면서 정부의 핵심 경제 법안인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렇게 우리 경제가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에서 3기 경제팀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유 부총리 임기 100일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취임 직후 보여줬던 강한 결기와는 달리 '관리형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2년 동안 사실상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올해에는 정말 가시적인 실적이 나와야 하는데 유 부총리는 과감한 추진력 면에서 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3개월간 무엇을 한 것인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 부총리가) 한게 뭐가 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며 "구조개혁이나 중점 법안들도 상당 부분은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며 선거용으로 활용해 국론을 분열시키기만 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더이상 3%대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비관론도 확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3.2%에서 2.7%로 하향조정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지난달 성장률 전망치를 3.3%에서 2.6%로 대폭 내렸다. 골드만삭스(2.4%), JP모건(2.9%), LG경제연구원(2.5%), 한국경제연구원(2.6%), 현대경제연구원(2.5%) 등 민간 기관들도 대부분 2%대 성장률을 점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 3.7%(세계 4.2%) ▲2012년 2.3%(세계 3.3%) ▲2013년 2.9%(세계 3.3%) ▲2014년 3.3%(세계 3.4%) ▲2015년 2.6%(세계 3.1%) 등 5년 연속으로 세계 평균을 밑돌고 있다. IMF는 올해에도 한국의 성장률이 세계 평균(3.2%)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3%대 성장 목표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 수출과 제조업 생산 등 일부 지표가 개선세를 보이고 있고 재정 조기집행,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 정책의 효과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2분기부터 경기가 반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 대로 내려앉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처방 없이는 3%대 성장률 회복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잠재성장능력 자체가 2%대 중반 정도로 낮아져 있다고 본다"며 "우리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절박성이 부족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있으면 나아질거라는 생각 때문에 구조조정 미루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