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저금리기조에도 불구하고 국내경기가 좀처럼 회복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유가 및 원자재 가격하락이 장기화되면서 디플레이션(deflation)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14일 경제 및 산업계 등에 따르면 국제 유가 및 원자재가격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다 2012년 하향된 후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급락하고 있다.
국제유가를 나타내는 'IMF 에너지상품가격지수'는 2014년 12월 전년동기보다 39.0% 하락했다. 기타 원자재가격을 나타내는 'IMF 비에너지상품가격지수' 역시 9.9% 떨어졌다.
올들어 상황은 더 심화됐다. 블룸버그 조사결과 지난해 배럴당 92.9달러를 기록했던 서부텍사스유는 올 5월 59.4달러, 6월 59.8달러 7월 50.9달러로 밀려나더니 8월에는 50달러선이 무너지면서 42.9달러까지 하락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배럴당 20달러까지 내려 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주요 원자재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가 발표한 비철금속 가격지수(LMEX)는 전월평균대비 7월 -5.4%에서 8월 -6.2%로 감소폭이 더 확대됐다.
알루미늄 평균가격의 경우 지난해 톤당 1753달러에서 올 2월 1821달러까지 올라갔으나 7월에는 1638달러로 급락했다. 8월에는 1679달러까지 올랐다가 9월에는 1614달러로 또 떨어졌다.
아연은 7월 2002달러에서 8월 1809.6달러, 9월 1788달러, 니켈은 1만1386달러에서 1만339달러, 1만190달러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철강 가격도 대부분 떨어졌다. e-나라지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철광석 가격이 톤당 61달러로 지난해 하반기 102달러에 비해 40% 하락했다.
철근은 754달러에서 685달러로 9%, 후판은 904달러에서 684달러로 24%, 냉연강판은 857달러에서 688달러로 20% 각각 감소했다.
이들 철강재는 건설, 조선, 자동차 등 산업활동을 위해 사용된다. 이처럼 원유 및 원자재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해 활용하는 우리 경제에는 분명 호재다.
유가 및 원자재가격이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낮아지면서 기업의 채산성을 좋게 한다. 쉽게 말해 이렇게 번돈으로 기업들은 투자를 늘릴 수 있고 근로자의 임금도 올려줄 수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도 소득 증대로 소비를 유발함으로써 경기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지금의 원자재가격 하락은 좋아만 할 일이 아니다. 공급과잉도 있지만 한국경제의 의존도가 높은 중국경제의 침체로 수요처를 찾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중국의 8월 수출액은 전년동기보다 6.1% 감소했다. 이는 전달의 감소폭 -8.3%보다 다소 완화된 것이나 2.8%의 증가율을 보였던 6월 수출에 비해선 크게 악화된 것이다.
또한 경기전망을 보여주는 중국의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3년만에 최저수준인 49.7로 떨어졌다. 50이상이면 경기 확장, 50미만이면 여기 위축을 뜻한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발표한 ‘최근의 국내외 경제동향’을 통해 “중국 수요둔화 우려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이같은 원자재가격 하락은 가뜩이나 바닥인 국내 소비자물가를 떨어뜨려 디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
디플레이션이란 경제활동의 침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획재정부의 그린북에 따르면 7월중 실업자는 99만9000명으로 전년동월보다 8만7000명 늘었고 실업률은 3.7%로 0.3%포인트 상승했다.
또한 설비투자는 2개월 연속 증가했으나 증가폭은 6월 4.2%에서 7월 1.3%로, 건설투자 증가율도 4.3%에서 0.8%로 각각 축소됐다.
광공업생산은 재고가 늘면서 전년동월대비 3.3%, 제조업 생산은 3.5%가 각각 빠졌다. 문제는 경기가 침체된 상태에서 물가하락과 결부돼 발생하는 디플레이션에 들어설 경우 단시간내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란 쉽지가 않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자주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월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 주최한 수요정책포럼에 참석해 “저물가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 부총리가 디플레이션을 공식 언급한 것은 당시가 처음인데 그 이후 몇 개월이 지났지만 0%대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유지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0.7% 오르는데 그쳤다. 지난해 12월 0.8%를 기록한 이후 9개월 연속 0%대다.
일부에서 근원물가가 전년동월보다 2.1% 상승하면서 8개월째 2%대를 보여 디플레이션 우려가 과장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보고 안심하긴 힘든 상황이다.
홍성욱 산업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제유가 및 원자재가격의 변동이 일시적인지 아니면 장기간 지속될 것인지를 면밀히 검토해 파급효과 증폭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원자재가격이 약세인 경우 소비자물가의 하락폭이 다소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지만 최근의 디플레 우려를 감안해 물가관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