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유로존 정상회의에서 17시간에 걸친 마라톤회의 끝에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됐다. 하지만 타결 이후 남은 과정 역시 험난할 전망이다.
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3일 "밤샘 회의 끝에 만장일치로 그리스 구제금융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투스크 의장은 "그리스가 강도높은 개혁안을 이행하는 대신 유럽안정기금(ESM) 프로그램과 금융지원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상회의 후속 조치로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 은행 유동성 지원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ECB는 그리스 의회의 승인 과정을 확인한 후 현재 890억 유로 수준인 한도를 서서히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수정이 이뤄졌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AP 통신 등이 입수한 정상회담 직전 유로그룹의 합의 내용에 따르면 ▲ 15일까지 개혁 입법 제정 ▲ 노동법·연금 개혁 등의 일정 설정 ▲ 500억 유로(약 63조원) 규모 그리스 국유자산의 외부펀드 이체 등이 포함됐다. 사실상 채권단의 요구가 거의 다 수용된 셈이다.
그리스 정부가 요구했던 채무 30% 탕감은 거부됐다. 독일 정부가 요구한 '한시적 그렉시트'도 제외됐다. 그리스는 오는 15일까지 개혁법안 입법을 마쳐야 한다. 하지만 내부 반대 여론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것보다 더 가혹한 새 개혁안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받으며 "새 긴축안의 대가로 부채 탕감을 얻어내겠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300표 중 251표를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부채 탕감은 커녕 500억 유로 규모의 국유자산을 매각할 것을 요구받는 상황이 되면서 그리스 내부의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다만 자금난으로 은행 도산 일보직전이라는 낭떠러지까지 몰렸던 상황을 감안해 그리스 의회가 개혁법안 입법 등에 동의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의 자금은 현재 거의 바닥났으며, 은행의 영업중단이 2주간 지속되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의 의회 승인 절차도 남았다. 그리스에 대해 부정적인 독일·핀란드·슬로바키아를 비롯해 프랑스·오스트리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은 자국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결정할 수 있다. 이중 독일과 핀란드의 의회는 타결된 구제금융 협상안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독일 국민들은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안에 매우 부정적이다. '한시적 그렉시트'를 주장해온 볼프강 쇼이블레 장관의 지지율이 메르켈을 앞지른 것은 이같은 국내 여론을 반영한다.
핀란드 의회의 경우 12일 유로존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을 반대하고 그렉시트를 지지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핀란드 공영방송 YLE가 전했다.
그리스 문제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독일이 정면충돌하면서 깊어진 유로존의 분열도 풀어야 할 과제다. 13일 오전 사회관계망(SNS) '트위터'에서는 '이것은 쿠데타'(ThisIsACoup)라는 해시태그(#)가 20만차례 이상 사용돼 실시간 1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유럽연합의 깃발과 나치 깃발을 합성한 이미지들도 제작돼 SNS를 타고 퍼져나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이것은 쿠데타'라는 해시태그는 아주 옳다"며 "채권단의 요구는 보복과 국가주권의 말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