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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머리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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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의 경쟁지상교육이 남긴 것
김동춘 - 성공회대 교수

최근 세간의 인기를 끈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정상급 가수들이 탈락하지 않기 위해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열창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경쟁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성과 신예 가리지 않고 가수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피 말리는 경쟁을 하도록 상황을 설정하기 때문에 우리 대중이 좋은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아닌가라고 그 긍정적 측면도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모든 경쟁이 선일까? 개인의 재능과 열정만으로 음악 소비자에게 곧바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자유경쟁시장과 대학의 교육과 학문, 특히 장차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 같은 것일까? 한국 최고 명문 KAIST의 청춘들이 과도한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두고 드는 질문이다. ‘공부하는 학생, 연구하는 교수’를 만들겠다는 서남표 총장 식의 ‘개혁’ 취지는 좋았다. 영국 《더 타임스》의 세계대학평가에서 2005년 232위였던 KAIST가 2009년엔 69위로 뛰어올랐고 연구비 수주액도 늘었으며 건물도 속속 들어섰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의 ‘개혁’ 이후 4명의 학생은 죽음을 선택했고, 남은 학생들도 극히 불행한 상태에 있다.

충격과 불행 몰고 온 ‘개혁’

하지만 온 나라가 이 문제로 들끓고 비판이 사방에서 비등해도 정작 그는 “이 세상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며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항상 이길 수는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술 더 떠서 그는 “외국대학도 KAIST의 개혁적 제도를 따르는 곳이 있다”, “압박 없이 사회가 발전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은 너무 나약해서 그렇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KAIST의 대학순위 향상이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의미하는 것일까? 교수의 논문편수 증대가 국제적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증거일까? 영어강의가 학생의 실력을 국제수준으로 높여줄까?

지난번 그의 재임이 논란이 되었을 때 “서 총장의 개혁이 결실을 못 거둔 채 중도하차하면 앞으로 또 언제 대학개혁을 실천하는 총장이 나올지 걱정이다”라고 앞장서서 그를 옹호했던 《조선일보》는 이 사건 이후에도 “서남표 개혁, 이대로 좌초하나”라고 온몸으로 사방의 비판에 맞서고 있는데, 여전히 ‘갈등조정의 실패’로 상황을 진단하고 제도적 보완을 하라는 정도의 제안을 하고 있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외국대학에도 자살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뭐 그리 야단이냐는 식으로 이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이 분의 머릿속을 의심한다”라고 지적했다는데, 나는 서남표 총장을 비롯해 그를 적극 옹호하는 보수언론, 그리고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화해서 부담을 주면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는 확신 하에서 그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우리 시대의 우상이자 신흥종교, 즉 시장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그 ‘머리’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부터 대기업의 오너, 일반 대중이나 학생들의 머릿속에 언제부터인지 이러한 신앙이 자리잡았기 때문에 매년 수 백 명의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이 자살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재를 범재로 만들어버린 학점경쟁

KAIST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학점이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경쟁은 그들을 학점기계로 만들었을지언정 결코 발랄한 과학도로 만들지 않았다. 학점기계가 된 학생들은 편한 과목만 골라들으려 하고, 인접 과목에 대한 관심을 접고, 동아리 활동을 전폐하고,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입학 때 재기발랄하던 천재 청년은 졸업이 가까워오면 공부에 흥미를 상실한 범재가 되어버린다.

사실 대학과 학계에서 오랫동안 몸담은 내 입장에서 보면 구태여 KASIT 학생들의 이야기 듣지 않아도 이러한 정책이 가져올 결과가 너무 분명해 보인다. 성취에 대한 격려가 아니라 탈락자의 낙인을 피하기 위한 학점경쟁 하에서 학점이 좋다고 해서 ‘점심값 치를 자격’을 얻는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런 학생들이 장차 국가의 과학기술을 짊어질 인재가 될지도 불투명하다.  해외저널에 실린 논문 편수가 많은 것은 교수가 열심히 연구한다는 외형적 지표는 되지만 그 분야의 탁월한 교육자 혹은 학자라는 보증을 해주기는 어렵고, 100% 영어강의가 학생을 국제적 표준으로 올려놓을 것 같지도 않다. 사실 이것은 KAIST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대학의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 대학의 치열한 경쟁과 질적인 우수성에 감탄했을 서남표 총장은 그동안 미국 물 먹고 압도된 나머지 그것을 시스템에 대한 고려 없이 직수입하여 적용하려 한 한국의 시장주의자들이 갖는 허점을 그대로 반복한 것 같다. 미국의 시장주의는 비록 힘과 돈이 있는 자라도 조직이나 개인이 반칙을 하면 엄한 처벌을 하는 시장주의이며, 탈락한 자도 재기할 기회를 얻거나 약간 못한 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탄력있는 시장주의이다. 또한 아직 자유롭게 사고할 단계인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경쟁논리를 적용하는 시장주의는 아니며, 주립대학 제도처럼 기초분야에 국가의 지원이 전제된 시장주의다. 그가 이 점을 알고 있을까?

KAIST가 미국 MIT와 다른 점

그런데 한국은 어떠한가? 기업의 세계에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치고, 조직에 들어가면 학벌이 실력을 압도하며, 돈 되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기초과학 연구하겠다는 사람은 바보취급을 받으며, 이미 십년 이상의 과도한 경쟁에 극도로 지쳐 있는, 인문학적 감성이 극히 취약한 대학생들이 있는 곳이 한국이다.

더구나 KAIST는 서남표 총장이 다닌 미국의 MIT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결코 MIT 학생들과 같은 조건에 있지 않다. 대기업이 기초과학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 한국에서 KAIST는 국가의 과학기술 미래를 짊어져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으며, 따라서 돈 잘 버는 직업을 포기하고 온 학생과 교수에게 자긍심과 만족감을 심어줄 때에야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설립 취지 자체가 전액 장학금으로 국가를 위해 일할 과학도를 기르자는 곳이고, 각자의 조건과 소질에 맞는 영재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곳이고, 못 따라가는 학생에게도 ‘금전’적 징벌보다는 엄격한 졸업심사를 적용해야 하는 곳이다.

모든 학문적 성취가 그러하지만, 과학발전은 결코 학점경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점 기계들이 우리 과학기술과 국가발전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을까? 더구나 의대나 한의대에  과학영재가 몰려가는 세태에서 KAIST에 들어온 학생들을 크게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어야 마땅하고, 영어를 못하거나 적응을 못해서 탈락할 위기에 몰리더라도 교육과정에 더욱 많이 투자해서 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경쟁지상과 시장만능의 신앙을 버려라

물론 서남표 총장 자신은 경쟁의 무풍지대에 있으면서 약자에게 무한경쟁을 강요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조직은 영어 협정문 번역도 제대로 못하면서 모든 국민에게 영어 사용을 강요하고, 자신은 불법과 편법을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도 법이니 시장이니 경쟁이니 떠드는 한국의 기득권세력과 같은 부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채호 선생이 한탄한 것처럼 ‘조선의 공자가 아닌 공자의 조선’이 된 또 하나의 예를 보여주었다. 대학도 경쟁이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은 나라와 대학을 살리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학생과 교수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목적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태에서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한국’이 되어버린 서글픈 현실을 목도한다.

경쟁을 신앙처럼 받드는 그들은 네 명의 학생이 죽어도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항변한다. 도대체 몇 명이 더 죽어야 하나? 지금 자라기도 전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수십만, 수백만의 학생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본토의 것보다 더 무지막지한 경쟁주의, 시장주의를 신앙처럼 신봉하는 그들의 저 확신에 차 있는 단단한 머리를 어찌할 것인가?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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