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재보궐선거 참패, 여권 권력지형의 급속한 변화, 본격적 레임덕 시작 등 정치적 수세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일 개각을 단행했다. 농림수산식품부장관에 서규용 전 차관, 환경부장관에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고용노동부장관에 이채필 노동부 차관, 국토해양부 장관에 권도엽 전 국토부 차관, 기획재정부장관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등 5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이날 낮까지만 하더라도 법무부장관에 권재진 민정수석과 통일부장관에 류우익 전 중국대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쩐 일인지 교체가 유력했던 법무장관과 통일장관은 모두 유임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청와대는 막판까지 2개 부처의 장관 교체를 고심했지만 이날 오후 치러진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친박계와 소장파가 지원한 황우여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에 당선되자, 청와대는 이 같은 당심을 읽고 더 이상 측근 인사를 내세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시 MB측근이자 TK출신인 이들을 기용할 경우 측근인사 또는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는 것.
그렇게 결정된 개각 내용을 두고 야권에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이른바 ‘왕의 남자’인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이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또 다시 내각에 살아남게 된 데 대해서는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평가는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정말 일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광범위한 검토를 통해서 압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듯 대체로 실무.관리형으로 지역안배도 적절히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왔기 때문이다. 4.27재보선 결과로 인해 청와대가 화들짝 놀라 민심을 반영해 개각을 했다는 것이다.
◆지역안배-실무형 배치…MB, 드디어 민심 읽나?
이번 개각 내용을 살펴보면 지역안배에 상당히 신경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탁된 5명의 장관을 출신 지역별로 보면 부산-경남(PK) 출신이 2명, 경북(TK) 출신이 1명, 충북 1명, 강원 1명이다. 과거 TK 중심으로 이뤄지던 인사 스타일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TK가 역차별 받는 상황이 나타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면모도 엿보인다. 또 호남 출신인 이귀남 법무부장관과 제주 출신인 현인택 장관을 유임시킴으로써 전체적인 내각의 출신 지역이 균형을 맞추게 됐다.
또 당초 하마평에 올랐던 류우익 주중대사와 권재진 민정수석 발탁을 무산시킨데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측근인사들을 배제시킨데 대한 평가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4·27 재보궐 선거 결과로 나타난 민심에 화들짝 놀란 민심개각으로 평가한다”면서 “이번 장관 내정자들은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강상구 대변인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은 하마평에 오르던 최측근 인사를 배제해 ‘친위내각’,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면했다”고 평가했다.
다수의 언론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보수 언론들마저 ‘당심에 놀란 MB가 쥐고 있던 측근 카드를 버렸다’, ‘여당 기류 살피던 청와대가 반란이 감지되자 유우익 카드를 내려놨다’고 분석했으며 진보 언론에서도 ‘MB가 민심에 밀려 실무형으로 개각을 단행했다’고 바라봤다. 순수한 배경은 아니라 하더라도 측근카드가 배제되고 실무형 인선이 이뤄진데 대해 분명한 평가가 나온 것이다.
쇄신 바람이 한창인 여당 또한 “이번 개각은 집권 4년차를 맞아 안정적으로 하반기 국정을 뒷받침하고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든든히 마련하기 위한 대통령의 고민을 보여주는 인사”라고 평가했다. 배은희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같이 말하며 “내정된 장관후보자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실력을 쌓았고 그 전문성을 공히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국정운영의 내실을 보다 튼튼히 다질 수 있는 적임자들”이라며 “과거처럼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흠집내기식 정치공세와 폭로로 일관하려는 야당의 움직임을 경계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완 회전문 인사에 점수 다 깎인 5.6개각, 험난한 청문회 예고
그러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왕의 남자’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이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이유 때문이다. 개각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던 야당들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국정파탄 외면한 인사’, ‘회전문 인사’, ‘반노동.친기업 정책 강행 인사’라는 것.
이와 관련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기재부 장관으로 내정된 박재완 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물가가 올라 서민경제의 직격탄이 될 것이라고 발언해 전경련 회장이 아닌지 의심이 되었던 인사”라며 “청와대의 목소리를 그대로 정책화하는 ‘독일병정’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물가와 주택, 노동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대변인은 또 “지난 재보선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반성도 없는 벽창호, 독일병정 인사”라며 “이재오 특임장관을 비롯해 남북정책의 실패를 책임질 통일부 장관, 법무부 장관은 제자리에 눌러 앉았다. 국정기조는 한 치도 바꾸지 않고 지친 장관 솎아낸 후 다시 돌격내각을 꿈꾸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유선진당도 박재완 장관의 기재부 장관 내정에 대해 ‘회전문 인사’, ‘측근인사’라며 “함량미달의 실망스러운 개각”이라고 혹평했다. 임영호 대변인은 이와 관련한 논평에서 “대통령 친위부대 2진과 1진이 돌아가면서 요직에 등용되는 회전문 인사”라며 “이 정부에 참신한 인재를 기대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경제수장인 기재부 장관에 내정된 박재완 노동부 장관은 이 정권의 반노동.친기업 정책의 열혈추종자로서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노동계와의 갈등을 자초하고 양대노총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왔던 인물로 이는 민생외면·친재벌 경제정책을 계속 가져가겠다는 오기”라고 맹성토했다.
“이번 개각은 ‘친위내각’,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면했다”고 평가했던 진보신당 강상구 대변인도 박재완 장관에 대해서는 “양대노총의 시국선언에 대한 날선 비판과 함께 ‘청년실업은 문사철 전공자의 과잉공급’ 때문이라며 최근 노동자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언사를 퍼붓고 반노동정책을 일삼아온 박 장관은 이후 노동부장관의 허울을 벗고 더 강한 ‘기업 프랜들리’로 국정을 움직이게 됐다”고 비판과 함께 강한 우려를 표했다. 《자세한 내용은 주간 시사뉴스 창간 23주년 393호(5월17일자 발행) 특집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