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0.02 (목)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윤형돈 칼럼

【윤형돈 칼럼】 윤형돈의 경영과 인간관계 ⑭-오하라미술관의 소장품을 구입한 화가 고지마

URL복사

아시아 전체 최고 수준 사립 미술관 오하라미술관

 

일본 오사카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구라시키라는 중소도시에는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 미술관인 오하라미술관이 있다. 규모는 아담한 편이지만 그 안에 걸려있는 소장품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미술관 앞에서 관객을 반기는 로댕의 조각상에서부터 시작해 모네의 <수련>, 고갱의 <즐거운 대지>, 르누아르와 마티스의 작품 등 미술사 책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거장들의 대표작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명작 들을 제치고 오하라미술관의 ‘얼굴’ 역할을 하는 작품은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소녀>인데 일본과 서양 미술의 만남을 그림 한 장에 담은 듯한 아름다운 그림이다. 작가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고지마 도라지로(1881~1929)이다. 그의 그림들이 보여주듯 그는 뛰어난 화가였다고 적혀 있고,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모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4살 된 고지마의 낙서를 본 서양화가가 천재성을 알아보고 가족들에게 그림을 공부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그때 당시의 화가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이어서 고지마의 가족들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고지마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유화 물감을 살 수 없었던 고지마는 페인트로 1897년에 할머니의 초상을 그렸는데 이 그림을 보고 감동을 한 할머니가 도쿄로 그림 유학을 보내주었다.

 

재능을 살릴 수 있는 후원자를 확보

 

고지마는 전국에서 그림 실력이 가장 뛰어난 학생들만 모인 도쿄미술학교의 4년 과정을 2년 만에 졸업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항상 겸손했다. 학생 신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학교 밖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지만, 지도교수의 간곡한 권유에 출품한 그림이 곧바로 일등상을 받게 되었고, 이런 실력과 잠재력을 인정받은 고지마는 오하라 가문의 지원으로 27살인 1908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이 무렵의 일본은 정치, 경제, 문화에 걸친 개혁을 이룬 메이지유신 이후 30년이 흘러 급속한 근대화에 성공한 때였다. 일본 미술계도 사회 다른 분야처럼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인상주의 거장들과 피카소, 마티스 등의 그림을 막대하게 사들였다. 오늘날 일본이 웬만한 유럽 국가들 못지않게 근대 서양 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이유이다. 1876년 일본 최초의 서양화과를 만들고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폰타네시(Antonio Fontanes)를 초빙해 서양 미술을 가르칠 정도였다. 부유한 가문은 서양화가들이 유럽으로 유학을 가도록 많이 지원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하라 가문의 지원을 받은 고지마이다.

 

고지마는 벨기에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여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하며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그의 스타일은 독창적으로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는 개척자라기보다는 소위 ‘선진 미술’을 성실하게 공부하고 받아들이는 모범생에 가까워서 미술아카데미 교장도 고지마의 일기에서 ‘일본 학생들이 일본만이 고유한 특징을 살리지 않고 무턱대고 서양인들을 흉내만 내고 있다’라고 충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5년 만에 일본에 돌아온 고지마는 영감을 얻기 위해 중국이나 한반도를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유럽에서 좋은 미술품을 구해 달라는 오하라 가문의 임무를 받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유럽을 방문하여 현지에서 여러 걸작을 사 왔다. 고지마는 ‘서양화를 배우는 우리 학생들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진심을 보였기에 놀라운 수준의 작품을 많이 사들일 수 있었다.

 

자기의 재능을 계발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 한계

 

그의 최후는 다소 허무하게 찾아왔다, 1924년 40대 초반에 접어든 고지마에게 일본 정부는 러시아와의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긴박한 회의 장면에 일왕이 등장하는 벽화를 그려 달라고 의뢰했다. 우리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지만, 일본 화가로서는 일생일대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과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작품을 그리고 전시하고 자주 해외여행도 하고 벽화도 제작하는 고된 일정에 병으로 쓰러져 1929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지마가 재능도 있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지만, ‘위대한 화가’로서의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표현이든 발상이든 시대를 뛰어넘는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그의 그림은 1910년대 초반이나 1920년대나 큰 차이가 없는데, 이것은 과거의 성공을 계속 끌고 가려는 안정 지향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가 일본 미술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뛰어났던 것은 미술품 수집이었고 그래서 그의 이름은 ‘화가 고지마’보다 ‘오하라미술관의 소장품을 구입한 화가 고지마’로 유명하다.

 

시사뉴스 칼럼니스트 / 운을 부르는 인맥관리연구소 대표 윤형돈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시사뉴스 칼럼니스트 / 운을 부르는 인맥관리연구소 대표 윤형돈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윤호중 행안장관 "중요 정보시스템 이중화, 예산 7천억~1조 소요 예상"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자원 현안질의에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관리하는 주요 핵심 정보시스템들을 양쪽 센터에서 동시에 가동하는 방식으로 이중화할 경우 7000억원에서 1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지금 파악하기로는, 대전센터에 있는 30여개의 1등급 정보시스템을 액티브-액티브 방식으로 구축하면, 700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공주센터까지 포함하면 (예산이) 1조원이 넘는다"고 덧붙였다. 액티브-액티브는 한쪽에서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쪽이 즉시 서비스를 이어받아 중단 없이 운영할 수 있는 체계로, 두 센터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가동되는 구조다. 정부는 정보시스템을 중요도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1등급은 국민 생활과 직결된 정보시스템으로, 정부24 등이 포함돼있다. 윤 장관은 이 방식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민간에서 사용하는 클라우드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윤 장관은 "보안 문제나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면 민간 자원을 리스(임차) 형태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며 "로드맵을 마련하기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디지털 약자들의 정보격차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은행 업무부터 병원 예약, 대중교통 이용, 행정 서비스까지 해결되는 시대다. 그러나 이 편리함은 상대적으로 디지털 정보활용 취약계층에게는 새로운 장벽이 되곤 한다. 각종 기관의 창구 업무는 줄어들고 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기만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전자정부, 모바일뱅킹, 온라인쇼핑, 스마트농업 등 대부분의 사회·경제 활동이 디지털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시대다. 하지만 모두가 그 혜택을 고루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뿐 아니라, 전업주부, 저학력자, 농촌 거주자, 장애인 등 이른바 ‘디지털 정보취약계층’은 여전히 정보 불평등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정보격차는 단순한 ‘기술 접근’의 문제가 아니다. 기기 사용 능력의 부족, 낮은 디지털 문해력, 인프라 격차, 생활환경의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과 활용 능력이 결여되면 일상적인 서비스 이용은 물론, 경제 활동, 교육 기회, 복지 접근까지 제한받는다. 디지털 기술이 사회를 더 평등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기존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방의 중장년층 여성이나 농민, 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