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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책과사람】 고정된 언어와 박제된 개념을 넘어서 집단을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 〈한국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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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다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대통령의 불법 계엄령 선포’라는 충격적 사건을 통해 김영민 교수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허약한 질서 위에 놓여 있는지 고발한다.

 

지금 한국은 성공과 실패가 동시에 존재하는 사회이며, 문제는 그 복합성을 감당하기에 기존의 언어가 너무 낡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을 이해하는 데 사용해온 고정된 관점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한국의 정체성을 재구성한다.

 

과거, 현재, 미래로 해부

 

저자는 홍익인간부터 계엄의 밤까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서 변화한 한국을 돌아보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질문조차하지 않는 개념들을 흔들고 새롭게 세운다. 단군신화의 낡은 관점을 갱신하고, 식민 체험의 복잡성을 재조명하며, 미시적 독립운동의 존재를 새롭게 이야기한다. 나아가 한국의 시민사회와 대학의 의미를 다시 묻고, 청년과 어른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과거’, ‘한국의 현재’, ‘한국의 미래’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단순한 시간 순서의 기술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를 ‘시간의 층위’를 빌려 해부하는 시도에 가깝다.

 

1부 ‘한국의 과거’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믿어온 개념들인 홍익인간, 단군신화, 삼국시대, 불교와 유교, 노비제도, 식민체험 등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한다.

 

김영민 교수에 따르면 단군신화는 외부 문명에 의해 정복당한 민족의 기억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신의 권위를 끌어온 정치적 서사일 수도 있다.

 

한편, ‘삼국시대’라는 개념은 김부식이라는 고려 시대 엘리트에 의해 제시된 하나의 관점에 불구하며, 실제로는 수십 개의 소국이 혼재했던 시대였다. 저자는 이를 통해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라 현재의 욕망과 권력이 재구성하고 해석하고 정당화한 ‘기억의 서사’임을 일깨운다.

 

무너지는 언어와 제도 사이에서

 

2부 ‘한국의 현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온 현실의 구조적 취약함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정당정치의 무능과 정체, 언론의 불신, 교육 제도의 실패, 개혁 담론의 무기력함 등 한국 사회를 이루는 제도적 기반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진단하는 저자는 이런 현상들을 단순한 기능적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개혁’, ‘민주주의’, ‘정의’라는 말들이 점점 기존 의미를 잃어가고, 낡은 제도 역시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무너지는 언어와 제도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볼 것을 요청한다.

 

3부 ‘한국의 미래’는 단순한 청사진 제시나 희망적 전망 대신,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사유의 실험이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규정짓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가? 청년과 노인, 도시와 농촌, 중산층과 주변부로 나뉜 채 대립만 남아버린 상황은 바뀔 수 있는가? 저자는 말한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거창한 이념적 선언이 아니라 일상과 정치를 다시 연결하고, 고통과 공동체를 재해석할 수 있는 감수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라고. 나아가 그는 한국인의 소원, 기회, 가능성을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지, 한국이라는 이름이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으려면 어떤 조건들이 마련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은 대화의 시작이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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