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박해일(37)과 신민아(30)에게 영화 '경주'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동북아 정치학의 최고 석학인 '최현'을 맡은 박해일은 베이징대 교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웠다.
박해일은 2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동북아 정치의 대가이다 보니 감독님이 중국어를 영화에서 보여주기를 원했다. 일본어는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라 따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려웠다. 아까 영화를 보는 동안 진땀을 흘렸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중국어는 처음 접한 언어다. 감독님의 전작에 나온 '두만강'의 여주인공인 옌볜대 출신 배우 윤란에게 직접 중국어 지도를 받았다. 열심히 따라했던 것 같다. 역시 한국어가 가장 쉽다. 나중에 중국어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다."
박해일은 태극권의 달인으로 나오는 장면을 위해 태극권도 익혔다. 보기와는 달리 느린 호흡의 동작들을 중단 없이 계속해 첫날부터 체력이 고갈되기도 했다. 박해일은 짧은 이 장면을 위해 아침마다 태극권 동작을 연습했다.
신민아는 경주의 전통찻집 '아라솔'의 고혹적인 여주인 '윤희'를 위해 다도의 기본과 문화를 체화하는 수련을 수차례 거듭하는 열정을 보였다. "크랭크인 한 달 전부터 다도 수업을 했다. 처음에는 차만 따르면 되는 줄 알았다. 영화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차를 따르는 순서가 있다.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롱테이크 촬영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박해일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시나리오만 봤을 때 부담이 컸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감독님의 배려가 컸다. 내 정신이 아닌 것처럼 연기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OK 사인이 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다른 영화와는 달랐다"고 전했다.
신민아도 "이렇게 긴 호흡의 영화는 처음"이라고 공감했다. "대사와 호흡이 길고 테이크도 길어서 살짝 긴장했다. 또 박해일 오빠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찍은 경험이 있어서 내가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좋은 긴장감이 계속 흘렀다. 좋은 경험이었고 다음에도 긴 호흡의 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의욕을 보였다.
'경주'는 1박2일 동안 경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여행기를 담은 코믹 멜로물이다. 죽은 친구와의 추억을 더듬어 경주를 찾은 최현이 우연히 만난 찻집 주인 윤희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으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망종' '중경' '두만강'으로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파리 영화제, 시애틀 영화제 등을 석권한 중국동포 장률 (52)감독이 연출했다. 장 감독은 '망종'의 도시 변두리, '경계'의 몽골 초원, '중경'과 '이리'의 두 도시, '두만강'의 두만강 한마을을 지나 올해는 '경주'를 새로운 도시로 내세웠다.
장 감독은 "1995년 처음 한국에 와서 경주에 가봤다. 무덤이 있는 곳에 보통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점에 놀랐다. 사람은 공간의 지배를 많이 받는 것 같다. 1995년 갈 때도 그렇고 7~8년 후도 그렇고 경주는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 모호했다. 또 그때 우연히 간 찻집에서 춘화를 봤고 그 장소에서 영화를 촬영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의 범위가 넓어졌다. 영화를 찍으며 처음으로 이 현장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꿈, 재미있는 꿈에서 깨는 것처럼 슬펐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낀 더 넓은 사랑의 매력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해일은 "시나리오를 보고 육체적·정신적으로 치유됐다. 잘 읽히면서도 제대로 해석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내가 맡은 최현과 경주에서의 여정이 잘 맞아 떨어졌다"면서 "이 영화로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의 톤을 알게 됐다"며 만족해했다.
신민아는 "이 영화는 명확한 사랑도 아니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모호하다. 경주에 있으면서 사랑도, 죽음도 함께 존재하는 걸 느꼈다"면서 "죽으면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주는 무덤과 사람 사는 공간이 같다. 죽음과 일상의 모호함을 이 영화에서 느꼈다.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경주'는 1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