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교병원 정형외과 대기실 앞. 병원 천장 스피커에서 “상담으로 인해 대기 시간이 45분 지연되고 있습니다”라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몇 개월 전부터 예약한 환자들로 가득 찬 대기실은 지연 방송이 나오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최근 대부분의 대형병원들이 예약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위의 경우처럼 기본적으로 20분 이상, 길게는 1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황이다.
실제로 뉴시스헬스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의 경우 진료는 1~2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대기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아 여기저기서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이날 오전 11시30분 병원 피부과. 아직도 한 시간 전에 예약한 환자가 진료 중이다. 충남에서 새벽차를 타고 예약 시간에 맞춰 온 환자 보호자 임모(여)씨는 급기야 간호사의 대기리스트를 보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임씨는 “예약을 했는데 1시간이나 시간이 지연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리스트를 보니 15분 안에 7~8명이 예약됐던데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피부과 A모 간호사는 “상담 과정에서 시간이 밀리는 경우가 많다”며 “15분에 3명 예약이 권장 사항이지만 환자의 수요가 많고 의사의 스케줄 상 7~8명까지 늘게 된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전라도에서 온 환자 김모씨는 “기차 예약을 12시 반에 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늦어질 줄 몰랐다”며 “제 때 기차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피부과 외에 다른 과에도 진료 예약을 한 환자 안모(여)씨는 시간이 지연되자 어디에서 대기를 해야 할 지 혼란스러워 했다. 그는 간호사에게 여러 차례 시간을 확인하기도 했다.
안씨는 “두 과의 예약 시간 차이를 넉넉히 뒀다고 생각했는데 평소보다 더 지연되는 것 같다”며 “지금 다른 과를 가봐야 할 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초진이 아닌 재진 환자들은 대기 시간이 긴 반면 진료 시간이 짧은 경우가 허다해 불만을 토로한다.
1년 여간 외래 진료를 받아 온 환자 김모(여)씨는 “들어가서 간략히 상태를 확인하고 약만 타오는 게 전부라 진료 시간이 1분도 안 된다”며 “오래 기다린 것 치고는 진료 시간이 충분하진 않은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동네 병원에서 병이 호전되지 않아 대형병원을 찾은 산부인과 환자 홍모(여)씨도 대기 시간뿐 아니라 진료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홍씨는 “5번째 오는데 모두 1시간 이상 기다렸다”며 “진료 시간에는 교수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고 싶지만 대기자도 많고 눈치가 보여 묻지 못하고 나오는 게 부지기수였다”고 말했다.
진료를 마친 그는 앞 쪽에 마련된 ‘설명간호사’를 통해 추가적인 궁금증을 해결하고 있었다.
설명간호사는 각 과별로 마련됐으며 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진료 및 질병 등에 대해 답변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오전 환자를 보고 있는 곳도 있었다. 내과 Y교수의 경우는 오전 진료만 하는 데도 90여 명 이상이 예약된 상태였다.
이는 건강보험법상 의사 1인당 적정 환자 수가 75명인 것과 비교하면 많은 수다. 환자가 많이 몰린 탓인지 40여 분 이상 진료가 지연되고 있었다.
환자 수가 많아 정형외과 L교수는 2개의 병실을 이용해 진료를 보기도 했다. 차트를 띄우는 등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각 병실에 한 명씩 전문의를 두고 번갈아 가면서 상태를 확인하는 형태였다.
정형외과 환자 박모(여)씨는 “진료 시간을 부족하게 느끼진 않지만 병실 두 개를 오가는 교수를 보면 제대로 된 진료가 이뤄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병원 측은 교수의 스케줄과 특정 의사를 선호하는 환자 등의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대학병원 교수는 진료뿐 아니라 연구, 교육, 검사 등을 병행해야 한다”며 “때문에 교수가 진료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 안에 봐야 하는 환자가 정해져 있고 새로 추가되기도 하기 때문에 대기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환자들도 특정 교수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3차 기관에서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난 경우 2차 기관인 협력 병원으로 전원 보내는 조치가 있지만 환자가 거부하면 이를 막을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