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11월 미국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6일(현지시간)부터는 노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사전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해리스 부통령이 차기 백악관 주인 자리를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중이다. 현재 판세는 접전 양상이다. 승패를 가름할 경합주 6곳 가운데 3곳이 초박빙이라는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판세 못지않게 두 사람의 대결은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둘은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 나이, 성별, 인종, 출신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크게 대비되는 두 후보 간 퇴로 없는 승부의 내면을 짚어봤다.
자메이카·인도계 이민자 딸... ‘최초’ 수식어 비백인 여성 정치인
해리스(59)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 최초 비백인·아시아계 부통령이자 여성 부통령 타이틀에 이어,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자 첫 아시아계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기록까지 세우게 된다. 미국 정가에서는 바이든이 2021년에 역대 최고령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그가 2024년 대선에 더 이상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로 인해 해리스는 부통령 취임과 동시에 바이든의 후계자로 불렸다. 하지만 바이든이 연임에 도전하면서 해리스의 새로운 도전은 물 건너가는 듯했다. 결국 인지력 논란에 휩싸인 바이든이 대선을 불과 4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전격 사퇴하면서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해리스는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아버지와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종적으로 흑인·아시아계인으로 분류된다. 이 같은 정체성에도 그는 백인과 남성 주류의 미국 사회 유리천장을 깨고 각종 ‘최초’ 타이틀을 갈아치워 왔다. 흑인 명문 하워드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해리스는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로 활동하던 그는 2004년엔 흑인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장에 올랐다.
또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으로 선출됐다. 재선을 거쳐 총 6년간 주 법무장관을 역임한 후 2017년에는 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했다. 흑인 여성으로는 2번째, 남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첫 당선이었다. 2020년에는 55세의 나이에 바이든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에 낙점된 뒤 대선 승리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미국의 최초 흑인·아시아계 부통령이자 여성 부통령이라는 기록을 쓴 순간이었다. 연방 의회에 발을 들인 지 불과 4년 만에 백악관으로 직행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하지만 부통령 4년 동안 특별한 정치적 성과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활동과 비교된다. 대통령 중심제라는 구조적 한계에서도 바이든은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해리스도 자신의 강점인 낙태나 인권, 경제적 평등 등에서 보다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 바이든과의 관계에서 불협화음이 날 의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 최고 부동산 재벌에서 대통령까지... “싸워라(Fight)” 강렬한 리더십
트럼프는 강렬하고 직설적인 소통 방식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명료하게 전달하면서 지지자들에게 강한 결속감을 준다고 평가받는다. SNS를 적극 활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달하고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도 장점이다. 대중은 이런 그를 강력한 리더십과 결단력의 소유자로 인식한다. 특히,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중 피격 직후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불끈 쥔 주먹을 공중으로 수차례 치켜들면서 “싸워라(Fight)”고 외치던 장면은 그의 상징이 됐다. 사건 이후 트럼프의 이미지는 강인함과 결단력을 갖춘 리더로 더욱 부각됐다.
트럼프(78)는 독일계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태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뉴욕에서 자수성가한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그는 13살에 사립 기숙학교인 뉴욕군사학교에 진학해 규율과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군사학교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사춘기를 보냈다. 뉴욕의 포덤대학에서 2년을 수학한 후 아이비리그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로 편입해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마친 트럼프는 아버지처럼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를 종잣돈으로 맨해튼 중심 그랜드 센트럴 역 인근의 코모도 호텔 재개발을 성공시켜 성공시켜 일약 뉴욕 부동산업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곧이어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58층짜리 호화 주상복합 빌딩인 트럼프 타워를 세웠다. 이후 맨해튼 곳곳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초고층 빌딩을 올리며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나갔다. 사업은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며 승승장구했고 부동산 제국인 트럼프 그룹을 일궈냈다. 시련의 시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은행과 뉴욕시를 상대로 특유의 ‘벼랑 끝 협상’을 통해 기사회생했다. 이 때문에 그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세금 회피 의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트럼프는 2004년 NBC 방송의 리얼리티 TV쇼를 진행하면서 대중 스타 반열에 오른다. 참가자들에게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는 독설을 퍼부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정치에 처음 발을 디딘 건 2000년이다. 당시 로스 페로가 창당한 개혁당 경선에 출마했다가 포기했고, 2012년엔 공화당 경선을 저울질하다가 불출마했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은 2015년이다. 2016년 트럼프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공화당 경선 후보를 물리친 다음 민주당의 3기 연속 백악관 장악을 노리던 힐러리 클린턴을 간발의 차로 이겼다.
현재 트럼프는 탈세와 회계 관련 조작 등 34개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 가운데 기소된 첫 사례다. 특히,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사당 무력 점거 사건은 미 정치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당내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큰 차이로 누르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직을 다시 차지했다. 미국 전 대통령이 낙선 후 백악관 재탈환을 시도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국민을 위해(For the people)” vs 트럼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나온 두 당의 선거 메시지도 대조적이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현재 미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부각시켰다면 민주당은 오히려 더 긍정적인 이미지로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해리스의 선거 캠페인 핵심 메시지는 ‘국민을 위해 싸우는 대통령’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해리스는 트럼프와 자신을 대비시켜 서민을 위해 정의를 실현한 검사 대 자신만 챙길 줄 아는 이기적인 억만장자로 규정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과거 회귀’ 프레임에 가두면서 자신은 “새로운 앞 길”을 그려가며 미래로 나아가는 후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찬조 연설을 한 민주당 인사들도 금수저로 태어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통 미국인과 다르며 그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전당대회 후 해리스 캠프는 새로운 슬로건 ‘New Way Forward(앞으로 나가는 새로운 길)’를 내놨다. 인종 차별, 이민자에 대한 반감 등이 증폭한 트럼프 대통령 재임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트럼프가 미국 정치에 등장한 지난 10년을 함께 넘어서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부터 일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지금 미국 모습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적극 부각하는 구호다. 특히, 이민자 증가로 인한 백인 비중의 감소, 제조업 쇠락과 도시 중심의 경제 발전,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등 글로벌 문제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것에 불만인 유권자를 겨냥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나 흥미롭다는 평가가 있었다. 과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부유한 사람들을 겨냥, 월스트리트나 자본주의 가치를 강조하곤 했다. 그런데 트럼프 등장 이후 특히,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워킹클래스, 서민의 정당을 강조하는 모습들이 나타나 과거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미 대선에서의 두 후보 간 경쟁은 역시 경제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미국 유권자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90%에 달한다. ‘트럼프와 해리스 중에서 누구를 더 신뢰하십니까’라는 물음에는 트럼프가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해리스에게 높은 물가, 비싼 집값에 책임이 있다고 트럼프가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 집값이 많이 오른 상태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여서 집값이 올랐다며 이민자 문제와 동시에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와 관련해 트럼프에 약세를 보이는 해리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적극 옹호하기보다는 일정한 차별화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해리스 캠프에서 300만 호 추가 공급 공약을 내놨다. 아이 출생 시 보조금 지급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도 제시했다. 큰 틀에서 바이든 행정부 기조는 유지하되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들로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통령 후보: 해리스, 경쟁력보다는 ‘안정’ vs 트럼프 ‘흙수저 출신’
해리스는 러닝메이트로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선택했다. 경합주에서 직접적으로 표에 도움이 될 후보 대신 당내 분란 소지를 차단하려는 안정적인 선택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부통령 러닝메이트 자리를 두고는 윌즈 주지사와 조지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막판까지 경쟁을 벌였다. 셔피로 주지사는 이번 대선 최대 경합주이자 대선 승리의 필수조건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유대인이라는 배경과 가자사태에 대한 입장이 자칫 민주진영 내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자칫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농촌 출신의 백인 남성인 월즈 주지사는 해리스의 이미지를 보완해 줄 수 있으나, 대선 승리가 좌우되는 경합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는 부통령 후보로 백인 노동자를 대변하는 ‘흙수저 출신’ JD 밴스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을 지명했다. 39세의 젊은 남성 초선 상원의원을 선택한 것은 기존 지지층을 결집하고 새로운 유권자층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강한 리더십과 결단력의 트럼프, 신뢰와 새로움의 밴스 이미지가 갖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부통령 지명자인 밴스는 2016년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강경 보수파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많은 미국인이 정치 시스템에 소외감을 느끼는 현재 상황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트럼프가 밴스의 새로운 이미지만으로 과거의 논란과 사법리스크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밴스는 과거 트럼프를 ‘미국의 히틀러’라고 비난했던 전력이 있다. 러닝메이트로서의 정치적 신뢰성, 정치적 경험 부족 등이 중도층 공략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해리스 226 vs 트럼프 219...매직넘버 270명, 7州에서 판가름
두 후보 간 승패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각 주(州)에서 이긴 후보가 인구별로 분포한 주별 선거인단을 싹쓸이하는 미국의 선거 방식 자체가 워낙 예측 불가인 데다, 전국 지지율 및 대선의 결과를 결정할 경합주 지지율이 모두 전례를 찾기 어려운 접전 구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합주 지지율은 1% 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초박빙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 현재 각 주 여론조사를 종합해 보면 전통적 민주당 지지지역인 뉴욕·캘리포니아 등 인구가 많은 대도시는 해리스 지지세가 압도적이다. 트럼프는 남부 텍사스·플로리다·루이지애나 등에서 우위를 굳혔다. 이를 토대로 선거인단을 나눠보면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해리스는 226명, 트럼프는 219명을 각각 확보한 상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매직 넘버’는 270명이다.
결국 박빙 경합주 7개의 선거인단 93명이 승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는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등 중부 러스트벨트(제조업 쇠락 지역)에서 트럼프를 약간 앞서고 있다. 트럼프는 애리조나·네바다·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 등 선벨트(sun belt·남부 지역) 경합주에서 근소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모두 오차 범위 내 접전이며, 우열을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전 투표가 시작됐지만 앞으로 두 달 동안 예상치도 못한 변수가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다. 10일 열리는 첫 생방송 토론이 첫 번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 온 해리스가 거친 언사로 이름난 트럼프와 맞서면서 경제 등 여러 이슈에 대해 유권자에게 얼마큼 호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