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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35) - 대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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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전북 완주의 대둔산이다. 주말을 이용해 세 부부가 가을 여행을 처가가 있는 금산으로 와서 어제는 영동 천태산 뒤쪽의 ‘신안사’까지 트레킹을 하고, 일요일 아침 일찍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대둔산 산행길에 올랐다.

 

대둔산은 ‘한듬산’을 한자화(漢字化)한 이름으로 ‘한’은 크다는 뜻이며 ‘듬’은 두메, 더미 덩이의 뜻으로 ‘큰 두메산’, ‘큰덩이의 산’을 뜻한다고 한다. 차를 타고 진산을 지나 가을볕 따스한 시골길로 완주 쪽으로 달리다 보면 배티재 고개 위의 휴게소에서 웅장한 대둔산 전경이 나타난다. 

 

대둔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괴석이 많으며. 정상인 마천대를 비롯하여 사방으로 뻗은 바위 능선들로 경관이 뛰어나다. 최고봉인 마천대(摩天臺)는 문지를 마(摩), 하늘 천(天)을 써서 ‘하늘에 닿는다’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붙인 이름이라 한다.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이 좋아 등산객이 많이 찾는 산으로 특히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워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조금 오르면 케이블카 탑승장이다. 4, 5년 전에 고교 동창 둘과 함께 오를 때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올랐는데 위의 탑승장까지 계속 가파른 계단을 숨을 헉헉거리며 오르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부부 동반임을 핑계로 강력히 케이블카 탑승을 주장하여 편하게 오른다. 1990년부터 운행한 케이블카는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오르는 풍광을 여유를 가지고 감상할 수 있다. 


오르면서 달라지는 풍광에 감탄하며 오르는데 케이블카 승무원이 짧은 탑승시간임에도 친절하게 대둔산의 유래와 주변 경관을 설명해 준다. 오르면서 멀리 보이는 큰 산은 ‘덕유산’이라 하며 그 옆으로 산들 사이로 보이는 도시가 ‘전주’라 한다.

 

 

발아래 지나는 동심 바위는 신라 문무왕 때 국사 원효대사가 처음 이 동심 바위를 보고 곧 떨어질 것 같은 아슬함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이 바위 아래서 지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밑에서 오를 때는 그 동심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고 느껴져 곧 등산로로 떨어질 듯했는데 위에서 보니 그리 아슬한 감은 못 느끼겠다.


짧은 시간이지만 멋진 풍광의 강렬한 인상으로 탑승장에서 하차하면 바로 가파른 철계단으로 이어진다. 가파름에 살짝 압도되어 오르다 보면 그래도 숨이 찰 만할 때 구름다리가 나오는데 이것이 유명한 금강 구름다리이다. 


임금 바위와 입석대 사이를 가로질러 놓은 높이 81m, 길이 50m의 이 다리 위에 서면 대둔산의 가파름을 직접 느낄 수 있다. 흔들림과 함께 발아래 금강 계곡의 깊이와 대둔산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광을 지나서 조금 더 오르면 일방통행의 거의 수직인 계단이 나온다. 


세 명의 선인이 능선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삼선 바위에 세워진 삼선계단은 경사가 51도라 하며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처럼, 마치 마천대로 그대로 오를 수 있는 듯이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있다. 감히 뒤는 못 돌아보고 양손으로 난간을 잡아가며 계속 눈앞의 계단만 바라보고 오르다 보니 어느덧 계단이 끝났다, 또다시 시작되는 가파른 바위 계단 길을 오르다 보면 칠성봉과 마천대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고 마천대 뒤를 돌아 오르는 등산로 응달에는 어젯밤 추위에 만들어진 얼음조각도 보인다.


어울리지 않게 ‘개척탑’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탑이 우뚝 세워져 있지만, 드디어 정상(878m). 흙보다는 돌멩이가 많은 산, 좌우를 보더라도 오르락내리락 첩첩이 주름진 산들이 물결치듯 펼쳐져 있는 풍경이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다. 

 


또한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마다 독특한 형상이 담긴 바위들이 잘 다듬어진 분재의 군락을 보는 것 같다. 올려보든 내려보든 시선이 멈추는 곳은 모두가 아름답고, 보면 볼수록 신비하고 웅장해서 산수화 병풍 속에 들어온 듯 아름다움을 만끽하다가도 케이블카 승무원이 말해준 저 골짝 어딘가 있을 동학혁명 최후항전 유적지를 생각하니 마음을 정좌(靜坐)하게 된다. 


올라오면서 읽은 대둔산항쟁전적비 안내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군이 1895년 2월 18일 거점 지인 대둔산 석두 골(798m)에서 농민군 지도자급 25명이 끝까지 싸우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때 동학 접주 김석순은 한 살쯤 되는 여아를 품에 안고 150m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결하였다 하니 얼마나 처참한 역사의 현장인가.” 


이 가슴 치는 문구에 황석영 작가의 소설 ‘여울물 소리’가 불현듯 떠올랐다. 시골 양반과 기생첩 사이에서 태어난 연옥과 양반과 노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분의 한계를 알고 세상을 떠돌던 이야기꾼 이 신통의 이야기로, 소설 속에서는 일본군이 우금치 전투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흰옷을 입은 무리가 죽창이나 칼등을 들고 무언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기관총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이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때 중얼거렸다는 것은 그들의 기도문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한울님을 모셔 조화가 정해짐을 길이 잊지 아니하면 온갖 일을 알게 되니라)일 것이다. 이 신통이 총 맞아 죽은 후, 남편의 유골함을 안고 연옥은 주막을 하며 살아가고,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면서 울며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우리의 역사를 흘려보낸다.


동학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재야역사학자 이 이화 선생의 ‘동학 농민 혁명사’에 의하면 “우리의 근대사는 어찌 보면 다양한 색깔이 섞여 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처럼 보이고, 또 어찌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온갖 모순과 갈등이 얽히고설켜 있고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꿈틀거림이 내재(內在)되어 있다”며, 그 당시 지배 계급인 양반이 아닌 민중들에 의해 일어난 동학 민중운동을 높게 평가하여 혁명이라 불렀다. 이렇듯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 곳곳에는 때론 슬프고 아프고 또 때론 즐겁고 신나는 이야기가 스며있어 더욱 정이 가고 아름답게 보이는가 보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서둘러 하산한 우리는 5일마다 열리는 금산 장을 구경하러 인삼 시장에 간다. 장터는 코로나 상황인데도 전국에서 인삼을 사러 몰려온 인파로 북적였으며 특히 인삼 튀김과 인삼 막걸리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가을의 아름다운 대둔산으로 눈 호강을 한 우리는 북적거림을 피해, 올해는 가격이 많이 내렸다는 인삼을 조금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10월의 화창한 가을을 기념하고 산에서 배운 우리의 역사를 위해 이 이화 선생의 역사에 대한 경구(警句)를 떠올리며 조촐한 저녁을 준비한다. 


“역사는 기억해야 살아있는 유산이 된다.  기억하지 않으면 그 사실이 던져 주는 진실을 깨닫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을 근거를 잃어버리게 된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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