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인류의 원동력 ‘어리석음’에 관한 역사적 통찰을 한 권에 담았다. 각종 ‘어리석음’과 ‘멍청이’를 둘러싼 동서고금의 놀라운 진실들, 인류의 미래에 관한 따끈따끈한 논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흥미진진한 연대기가 펼쳐진다.
스티븐 핑커, 롤프 도벨리, 폴 벤, 로버트 서튼 등 35인의 지성이 목소리를 낸 유머러스하면서도 뾰족한 세계사 책이다.
각 분야 석학 35인의 지적 통찰
어리석음은 그 어떤 요소보다도 인류의 탄생기부터 현시대까지 끊임없이 역사의 불길을 지펴온 원동력이었다.
농업이라는 인류의 획기적 발명이 이루어진 석기 시대에도, 불가사의에 가까운 피라미드를 건축해낸 고대 이집트에서도, 힌두교와 불교가 태어난 문명의 정신적 고향 인도에서도, 최초의 제국을 건설하고 다양한 사상이 쟁명한 중국에서도,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와 합리적 제국을 운영한 로마에서도 어리석음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가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지고한 종교와 군주의 논리가 지배한 중세에도, 정치 · 산업 · 문화 면에서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낸 근대 이후의 인류에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부지런히 스스로를 자승자박에 빠뜨리고, 실수를 키우고, 전쟁을 부추기고, 진실을 가로막고, 희망을 배반하고, 발밑을 황폐하게 해왔다. 이 책은 바로 그 바보짓의 역사적인 실상을 각 분야 지식인들의 재미있고 날렵한 수다로 풀어낸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인문과학 저널리스트로 전작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로 화제를 일으킨 장프랑수아 마르미옹이 인류적 차원에서 어리석음의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려 각 분야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이자 저명한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멍청이, 자연선택 앞에 서다’라는 제목으로 진화론 속에서 살아남아 온 멍청이의 힘을 역설한다. 고대사 분야의 세계적인 거장인 콜레주드프랑스의 폴 벤 교수는 역사 속에서 민중이 보여온 ‘어리석음’을 분석한다. 그 어리석음은 우매한 광기로 나타나기도 했고, 자기 권리에 대한 합당한 요구로 화하기도 했다.
경영인 롤프 도벨리와 하버드대 경영학과 로버트 서튼 교수도 SNS 시대의 어리석음에 대해 재치 있는 통찰을 선보인다. 최근 향년 97세로 작고한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학자 마르크 페로의 글에는 직접 목격한 2차 대전 발발, 스탈린의 독재, 알제리전쟁 등의 세계사적 순간에 각국 수뇌부와 지식인이 드러냈던 판단 착오와 오류가 위트 있게 그려져 있다.
역사와 문명을 이해하는 색다른 시각
이 책은 인류 역사 속의 수많은 ‘어리석은’ 인물과 행위, 나아가 그에 대한 당대 세간의 평가에까지 역사의 돋보기를 들이댄다. 중세의 점성술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과학적 학문이라 인정하기 어려운 비합리성을 띤 분야지만, 신학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도리어 내로라하는 지식인들보다 더 과학적인 사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수회와 ‘키보드 배틀’을 벌인 18세기 계몽주의자들처럼, 어리석다는 평을 들었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는 더 슬기로웠다는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도 있다. 변방의 보이아티아인을 욕한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아프리카의 피식민자를 깔본 프랑스의 식민주의자들처럼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한 쪽이 현대에는 더 어리석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어리석음이 작용하는 방식은 늘 이렇게 복잡했다. 이 책은 이같은 다양한 시대, 지역, 분야, 이슈를 망라하는 35개 챕터마다 해당 분야 전문가의 학문적 개성이 드러나는 유의미한 재담을 통해 인류와 문명, 역사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