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시민운동의 아이콘’, ‘혁신행정가’로 불리던 고(故)박원순 시장은 2011년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출마해 당선, 서울시장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2011년 35대 서울시장에 당선된 그는 2014년·2018년 지방선거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역대 서울시장 중 3선에 성공한 사람은 박 시장이 처음이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2남 5녀의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합격했다. 하지만 입학 석 달 만에 유신체제 반대 교내 시위로 투옥된 뒤 학교에서 제명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해 1980년 사법시험 22회에 합격해 대구지검에서 검사로 근무했지만 1년 만에 그만두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권변호사로는 권인숙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수많은 시국사건을 맡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시작에도 참여했다.
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던 그는 1991년 돌연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생활을 마친 박 시장은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1995년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1인 시위라는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고,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국회의원 낙천·낙선 운동을 주도했다. 2000년에는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었다. 2006년에는 희망제작소를 창립했다.
박 시장은 2018년 서울시 최초 3선 시장이자 마지막 임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공식적인 서울시 부시장 3명 외에 2명의 특별위원장을 임명하는 등 정치적 행보를 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에 맞서 선별진료소 확대와 확진자 동선공개, 자가격리자 관리 등에 적극 나서고 신천지예수교 법인허가 취소 등 강력하고 선제적인 조치로 감염병 확산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는 지난 6일 민선 7기 2주년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하는 등 남은 임기 시정 구상에 대해 의욕적으로 설명했다.
실종 전날인 8일에도 오전에는 기자설명회를 열어 '서울판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오후에는 국회를 찾아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면담을 갖고 서울시 주택 대책 등을 논의하는 등 분주한 활동을 이어갔다. 저녁에는 민선 5기, 6기 구청장 출신들과 친목 모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시장은 9일 오전, 예정됐던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등산복차림으로 공관을 나섰다. 이날 오후 5시17분경 박 시장의 딸이 경찰에 박 시장의 실종 신고를 했고, 이로부터 7시간여 만인 10일 오전 0시를 조금지나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