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파고든 세계적 베스트셀러 <녹색 세계사>로 찬사를 받은 역사가 클라이브 폰팅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앞서 인간 중심주의에 문제를 제기했던 폰팅은 두 권으로 나뉘어 소개되는 이 책을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의 세계사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역사 서술의 새로운 패러다임
유럽인이 도착하기 이전의 태평양과 아메리카에 유라시아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대서양 세계에서 눈을 돌려 인도양 세계에 주목하며,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같은 화려한 수사에 밀려난 동양의 세계사적 역할을 재발견한다.
이 책은 서양 중심의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반기를 든 최초의 세계사로서 이후에 나온 수많은 역사서의 레퍼런스가 됐다. 인류의 기원에서 시작해 현대 세계의 탄생에 이르는 장대하고 극적인 과정을 선입견을 깨는 접근법과 명쾌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풀어낸 역작이다.
기존의 세계사 대부분은 문명을 위주로 내용을 구성하는데, 특히, 서양 문명을 중심으로 삼는다. 아널드 토인비나 윌리엄 맥닐 같은 당대의 역사학자들도 이러한 접근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서양에 속하지 않는 세상 사람 대다수의 역할과 경험은 간과되고 무시당했다. 폰팅은 세계사를 움직인 주된 동력이 서양 문명에서 나왔다는 관점을 거부한다. 서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쥔 것은 최근 몇 세기의 일일 뿐이고 그마저도 과대평가됐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책에는 전통적인 주제 중 하나인 르네상스를 위한 자리가 없다. 그보다는 고전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켜 서유럽에 전해준 이슬람세계에 페이지를 할애함으로써 뿌리 깊은 유럽 중심주의의 연원을 하나하나 깨부순다.
대변혁의 기원과 과정 망라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1>은 선사시대에서 중세까지의 세계를 조망한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는 과정을, 농경의 시작과 함께 초기 제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다. 또한, 고립된 채 자기들만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문명을 이룬 아메리카와 태평양에 주목하고 중국과 이슬람의 번영이 가져다준 영향을 논한다.
몽골의 흥기는 세계사에 어떤 전환을 가져왔을까? 폰팅은 근대와 현대를 서술하기 위한 서론이 아닌, 세계사 그 자체로서 선사시대와 고대, 중세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저자는 이집트는 문명의 발상지가 아니며, 송나라는 유럽보다 먼저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을 달성할 뻔했다고 주장한다.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2>는 근세에서 현대까지의 세계를 조망한다. 유럽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 세계와 직접 만나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메리카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갖가지 우연과 정복, 약탈을 통해 유럽은 세계사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도약한다. 그런데도 폰팅은 유럽이 세계에 미친 영향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고 단언한다. 또한 두 차례의 내전이 끝나고 성립된 오늘날의 세계와 그 미래를 진단하고 예측하며 대응책을 제시한다.
폰팅은 당시의 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어서 서양에 바라는 것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반면에 유럽인들은 동양의 생산품을 원했다. 유럽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 원인에 대해 저자는 ‘지리적 우연성’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유라시아의 서쪽 끝에 있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의 부를 약탈해 다른 유라시아 지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폰팅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아시아의 대두가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1750년 이후 일시적으로 잃었던 지위를 되찾는 과정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