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담긴 말은 상대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지만 미움을 담은 말은 상처를 줍니다. 예수님은 선과 사랑이 담긴 말, 진실한 말, 생명을 살리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불필요하고 무익한 말을 하지 않으셨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온유하고 자상한 모습으로 영적인 말씀을 지혜롭게 비유를 통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악한 자에게도 악으로 대항치 않으시며 오직 진리와 선으로 말씀하셨지요.
사람들이 올무를 잡고자 여러 가지 말로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결코 찌르거나 변론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운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하고 지혜로운 말씀으로 일러 줄 뿐이었지요. 그래도 깨우치지 못할 때에는 다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한 율법사가 시험하기 위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율법사는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사가 자기를 시험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구태여 올무 잡힐 필요가 없기에 대답해 주시지 않고 되물으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그러자 율법사가 대답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꼬투리도 잡지 못한 율법사는 끈질기게 “내 이웃은 누구오니이까?” 하며 질문을 계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마음에 진정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감정이 나지 않게 하면서 깨우침을 주고자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거반 죽게 되었는데 제사장도 그냥 지나가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으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에 거기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으니 누가 과연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당시에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천대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사는 예수님의 질문에 어쩔 수 없이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고 담담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인 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 몇 마디 말씀하신 것 외에 어떤 변론도 하지 않으셨지요.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서도 아무와도 다투지 않음은 물론,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이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실 뿐이었습니다.
또한 달고 오묘한 생명의 말씀으로 은혜를 끼치고 힘과 소망과 감동함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듣기에 좋은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심령을 변화시키는 날선 검과 같은 말씀으로 깨우쳐 주기도 하셨지요.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말은 범사에 유익만 주는,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입술을 닮아 선과 사랑, 진실이 담긴 말로 사람들에게 힘과 소망을 주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언 12:19)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