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세권 기자] 반도체 제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혈액암 발생 위험이 전체 근로자 대비 1.55~1.92배 높다는 정부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후 10년간의 역학조사를 벌인 끝에 나온 정부차원의 공식 확인인 셈이다. 반올림 측은 반도체 산업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해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백혈병 사망 위험 일반국민 대비 1.71배, 전체 근로자 대비 2.3배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은 2009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10년 동안의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에 대한 암 발생 및 사망 위험비를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008년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으나 관찰 자료의 부족 등 한계가 있었다. 공단은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고 충분한 관찰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역학조사는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 6개사 전·현직 근로자 약 20만 명을 대상으로 암 발생 및 사망 위험비를 분석했다.
역학조사 결과 반도체 여성 근로자는 일반국민 및 전체 근로자에 비해 혈액암(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의 발생 및 사망 위험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혈병의 경우 발생 위험은 일반국민 대비 1.19배, 전체 근로자 대비 1.55배인 것으로 나타났고, 사망 위험은 일반국민 대비 1.71배, 전체 근로자 대비 2.3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호지킨림프종의 경우 발생 위험은 일반국민 대비 1.71배, 전체 근로자 대비 1.92배인 것으로 나타났고, 사망 위험은 일반국민 대비 2.52배, 전체 근로자 대비 3.68배로 나타났다. 안전보건공단은 "혈액암 발생에 기여한 특정한 원인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사항을 종합할 때 작업환경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공단은 그 근거로 ▲20-24세 여성 오퍼레이터에서 혈액암의 발생 위험비가 높은 점 ▲클린룸 작업자인 오퍼레이터·엔지니어 등에서 혈액암 발생 또는 사망 위험비가 높은 점 ▲현재보다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높았던 2010년 이전 여성 입사자에서 혈액암 발생 위험비가 높은 점 ▲국내 반도체 제조업에 대한 다른 연구들에서도 유사한 암의 증가·여성의 생식기계 건강이상이 보고된 점 등을 꼽았다.
안전보건공단은 "물리화학적 위험요인에 노출이 많은 직무인 여성 오퍼레이터와 남성 장비엔지니어에서 주로 발생 위험비가 증가한 점, 젊은 연령에서 위험비가 높았던 점 등을 종합할 때 작업환경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희귀암의 경우 사례 부족..추가적이 관찰 필요
안전보건공단은 다만 "혈액암 외에 위암, 유방암, 신장암, 일부 희귀암도 발생 위험비가 높았는데 이는 반도체 근로자들이 일반국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암 검진을 받을 기회가 많아서 위암 등이 많이 발견된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하고, 희귀암의 경우 사례가 부족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단은 또 "위암, 유방암, 신장암은 건강검진기회 증가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는 암이지만 여성 오퍼레이터, 남성 장비엔지니어 등의 직무에서 상대적으로 발생 또는 사망 위험비가 높았다"며 "비교적 젊은 연령에서 발생 위험비가 높게 나타나 추적관찰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피부 악성흑색종, 고환암, 췌장암, 주침샘암, 뼈·관절암, 부신암, 비인두암 등은 사례수가 충분치 않아 직무에 의한 영향을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일부 암종은 남성 장비엔지니어, 여성 오퍼레이터 등에서 발생 위험비가 높게 나타나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단은 그러면서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 근로자의 건강과 작업환경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반도체 제조업의 건강영향에 대한 추가 연구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안전보건공단 박두용 이사장은 "이번 반도체 역학조사 결과를 통해 국내 반도체 제조업의 암발생 위험을 관리하고, 능동적 예방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공단은 향후 업종별 위험군 역학조사를 활성화해 질병발생 전 위험을 감지하는 역학조사 본래의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반올림, 반도체 산업 위험의 외주화 개선 절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측은 논평을 통해 “11년 넘도록 피해자들이 말해왔던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쉽지 않았을 연구를 수행한 분들의 노고도 기억해야겠다”면서도, “더 큰 위험에 노출되었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못한 점과, 작업환경과 화학물질에 대한 자료의 한계로 암의 원인을 좁혀가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즉 암 위험이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이전되진 않았을지, 그리고 위암, 유방암, 갑상선암이 높게나온 것도 단지 건강진단 기회가 많아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야간교대근무나 방사선 노출의 영향 때문인지도 짚어보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반올림 측은 ▲정부는 직업성 암의 산재인정 문턱을 더욱 낮추고, ▲하청·협력업체 등 고위험군을 포함하고 작업환경과 화학물질 정보를 충실히 확보하여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 지속하고, ▲이런 연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작업환경과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들을 책임 있게 만들고 투명 제공하며, ▲반도체 노동자 건강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작업환경 관리 방법과 기준을 제정을 강조했다.